황금들창코원숭이(학명 Rhinopithecus roxellana). 수백마리씩 복잡한 다단계 사회를 이뤄 서로 협력함으로써 추운 곳에서 적응할 수 있었다./Guanlai Ouyang

해발 1500m가 넘는 중국의 삼림지대에는 손오공의 모델로 알려진 황금들창코원숭이가 산다. 이름처럼 황금빛 털에 들창코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특이하게 파란색을 띠고 있다. 손오공이 화과산에서 무리를 이끌고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밝혀졌다.사회적 유대감을 높인 호르몬 유전자가 발달하면서 더 크고 복잡한 사회를 이뤄 추운 지역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 서북대의 바오구오 리(Baoguo Li) 교수와 호주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대의 시릴 그루터 (Cyril Grueter)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콜로부스원숭이 아과(亞科)에 속하는 원숭이들이 추운 지역에 적응하기 위해 사회 구조를 바꾼 과정을 처음으로 유전자 차원에서 규명했다”고 밝혔다.

◇서식지 환경 따라 사회 구조 달라져

콜로부스는 꼬리가 긴 구세계원숭이에 속하는 아과로, 열대 우림의 랑구르원숭이에서 눈 덮인 고지대에 사는 들창코원숭이까지 다양한 종이 있다. 중국과 호주, 미국, 영국 과학자들은 아시아 콜로부스 아과 원숭이의 게놈(유전체)을 해독해 서식지, 사회 구조와 비교했다. 그 결과 추운 곳에 사는 원숭이가 더 크고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이언스는 이날 특집으로 영장류 게놈 연구 논문 10편을 소개했는데, 표지에 콜로부스 아과 원숭이 논문의 주요 연구대상인 황금들창코원숭이 무리 사진을 실었다.

논문 공저자인 미국 일리노이대의 폴 가버(Paul Garber) 교수는 “모든 영장류는 사회 속에서 살지만, 무리의 규모와 응집력이 다르다”며 “두세 마리 단위로 사는 원숭이가 있는가 하면, 1000마리까지 모여 사는 종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이를테면 더운 인도에 사는 랑구르원숭이는 우두머리 수컷이 암컷 몇 마리를 거느리는 전형적인 하렘을 이룬다. 열대 지역에는 먹이가 풍부해 작은 무리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우두머리는 다른 수컷이 오면 맹렬히 싸워 몰아낸다. 그보다 좀 더 북쪽에 사는 코주부원숭이는 여전히 하렘을 이루고 있지만, 종종 영역이 겹친다. 필요할 때는 모여 산다는 말이다.

더 추운 곳으로 갈수록 사회가 더 복잡해졌다. 윈난들창코원숭이는 심지어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대에 산다.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곳이어서 서로의 체온이 절실하다. 먹이인 식물도 군데군데 흩어져 있어 넓은 지역을 돌아다녀야 한다. 큰 무리가 필요한 환경이다.

가버 교수는 “추운 곳에 사는 들창코원숭이는 여러 하렘이 일년내내 함께 머물며 다단계 사회를 이룬다”고 말했다. 단순히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융합했다. 황금들창코원숭이는 다른 하렘에 속한 원숭이와 짝짓기하는 비율이 50%나 됐다.

윈난들창코원숭이(Rhinopithecus bieti)는 해발 4000m가 넘는 곳에서 산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곳이어서 무리를 지어 체온을 나누고 먹이를 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Paul Garber

◇호르몬 변화 덕분에 추운 곳에 적응

원숭이가 추운 곳에 정착해 큰 무리를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은 유전자에 있었다. 600만년 전 후기 마이오세 빙하기에 에너지 대사와 신경 호르몬 조절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진화해 원숭이가 추위에 적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논문 공저자인 영국 브리스톨대의 크리스토퍼 오피(Christopher Opie)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영장류의 사회 시스템 진화를 이끈 유전자 적응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예가 옥시토신과 도파민 호르몬이다. 옥시토신은 자궁을 수축시켜 출산을 돕고 젖을 분비시킨다. 사회적 교감과 부부애, 모성 본능을 촉진해 ‘사랑의 호르몬’으로도 불린다. 도파민은 사회성을 촉진하는 호르몬으로, 보상 중추를 자극해 행복감을 준다. 가버 교수는 “들창코원숭이는 어미와 자식의 유대감이 크고 모유 수유 기간이 길어져 유아 생존율이 증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유대를 촉진하는 호르몬은 또 수컷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천적에 같이 대응하도록 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들창코원숭이가 사는 추운 지역에는 눈표범이나 호랑이, 곰 같은 대형 포식동물이 있는데, 하렘의 우두머리 수컷 혼자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황금들창코원숭이(학명 Rhinopithecus roxellana)는 옥시토신 호르몬이 발달해 모유 수유 기간이 길어지고 어미와 자식 간 유대감이 높아져 유아 생존율이 높아졌다./Guanlai Ouyang

손오공의 성공 사례는 미래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기후 변화의 영향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대의 그루터 교수는 “오늘날 기후 변화가 동물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기후 변화로 어떤 사회 진화가 일어날지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bl8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