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곁을 맴돌며 과잉 양육하는 헬리콥터 부모는 자식의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자연에서는 해로운 돌연변이를 축적하는 결과를 낳는 것으로 나타났다./AdobeStock

걸핏하면 학교로 찾아오는 학부모가 있다. 과잉 보호의 상징인 ‘헬리콥터 부모’이다. 자녀의 학교 주변을 헬리콥터처럼 맴돌며 사사건건 간섭한다. 이제 직장에도 헬리콥터 부모가 뜬다. 신입 사원에게 싫은 말을 좀 했더니 부모를 데려왔더라는 얘기는 이제 신기한 일이 아니다.

자연에도 헬리콥터 부모가 있다. 자식 곁을 좀처럼 떠나지 않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 챙긴다. 하지만 과잉 보호는 자식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동물학과의 레베카 킬너( Rebecca Kilner) 교수 연구진은 지난 2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왕립학회보 B’에 “부모가 양육하는 곤충은 홀로 자라는 경우보다 해로운 돌연변이가 더 빨리 늘어난다”고 밝혔다.

◇자연에서 과잉보호는 오히려 독

부모는 늘 걱정이 많다. 아이에게 자유를 주면 엉망으로 자랄 것 같고, 반대로 하나하나 챙겨주면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될까 걱정된다. 자연에서도 비슷한 딜레마가 있다, 돌연변이 개체는 자연스럽게 도태되지만, 부모가 정성으로 보살피면 살아남을 수 있다. 돌연변이는 도태돼야 할까, 과잉 양육을 하더라도 살리는 게 좋을까.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자연에서 헬리콥터 양육이 자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부모가 자식을 돌보면서도 수명이 짧은 동물을 택했다. 바로 송장벌레(학명 Nicrophorus vespilloides)이다. 성체는 작은 동물의 사체에 알을 낳고 키우며 수시로 천연 소독제를 분비해 병원균을 차단한다. 연구진은 한 무리는 원래대로 부모가 새끼를 키우게 했고, 다른 무리는 알에서 깬 애벌레가 혼자 자라도록 했다. 두 무리는 20세대 동안 따로 키웠다.

연구진은 해로운 돌연변이를 증폭시키기 위해 두 무리를 각각 근친교배했다. 실험 결과 부모가 보살핀 무리는 근친교배를 한 지 단 2세대 만에 사라졌다. 부모 보살핌 없이 혼자 자라는 무리는 4세대까지 버텼다. 헬리콥터 부모의 과잉 양육이 돌연변이의 자연선택을 막아 유전자를 약화시킨 것이다.

송장벌레와 애벌레. 부모 양육을 받지 않고 홀로 자란 송장벌레가 더 유전자가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양육이 해로운 돌연변이의 자연선택을 막기 때문이다./영 케임브리지대

◇헬리콥터 부모는 정신 건강에 해로워

헬리콥터 부모가 사람 유전자에는 어떤 영향을 줬는지 알아보기 어렵다. 장기적 연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일부러 양육을 하지 않고 방임하는 실험을 할 수는 없다. 대신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연구에서 밝혀졌다.

미국 킨주립대 심리학과 닐 몽고메리(Neil Montgomery)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5월 미국 심리과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부모의 과잉 보호를 받으면 자녀가 신경증을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대학 신입생 300여명에게 ‘부모가 나를 대신해 학교에 전화를 해서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 ‘연락 없이 이틀이 지나면 부모가 연락해온다’ 등의 질문을 던졌다. 설문 결과 약 10%가 헬리콥터 부모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학생들은 새로운 생각이나 행동에 덜 개방적이었으며, 불안하고 충동적인 성향을 보였다.

노르웨이 스타방에르대 연구진도 같은 시기 국제 학술지 ‘첨단 심리학’에 헬리콥터 양육이 불안과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관련 연구 38건을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헬리콥터 양육과 우울증 사이에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관련이 있다는 점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보노보 어미가 어린 수컷의 털을 다듬고 있다. 보노보 어미는 아들의 짝짓기까지 주선한다./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아들 짝짓기도 주선하는 보노보 어미

헬리콥터 부모는 최근 사회적 주목을 받았지만, 예전부터 있었던 현상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심지어 인간과 진화 계통에서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보노보에서도 나타난다.

2019년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마틴 서벡(Martin Surbeck) 박사 연구진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보노보 어미는 아들을 배란기 암컷 곁으로 데려가고 짝짓기 동안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기까지 한다”고 밝혔다. 인간으로 치면 아들의 잠자리까지 챙기는 극단적인 헬리콥터 엄마인 셈이다.

연구진은 보노보 헬리콥터 엄마는 자신이 직접 자식을 낳는 대신, 아들의 짝짓기를 적극적으로 도움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후손에 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노보 어미는 딸은 챙기지 않았다. 수컷은 어미와 함께 무리에 남지만, 암컷은 다른 무리로 떠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헬리콥터 양육은 해로운 돌연변이를 축적하지만, 때로는 부모의 유전자를 후대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인간 사회에서도 헬리콥터 부모가 자식의 정신 건강에 나쁘다고 하지만, 총기 사고가 많거나 사회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는 자식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도 직장에서 신입 사원의 부모와 마주치는 일은 누구나 피하고 싶지 않을까.

참고자료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2023), DOI: https://doi.org/10.1098/rspb.2023.0115

Social Science & Medicine(2023), DOI: https://doi.org/10.1016/j.socscimed.2022.115593

Frontiers in Psychology(2022), DOI: https://doi.org/10.3389/fpsyg.2022.872981

Current Biology(2019), DOI: https://doi.org/10.1016/j.cub.2019.03.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