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알래스카에서 북극땅다람쥐가 굴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북극땅다람쥐 암컷은 25년 전보다 10일 일찍 동면에서 깨어났다./미 콜로라도 주립대

북극에 사는 다람쥐 암컷이 지구 온난화 때문에 봄마다 수컷을 만나지 못하고 독수공방(獨守空房)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암컷이 수컷보다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나 짝짓기 철에도 홀로 지낸다는 말이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생물학과의 코리 윌리엄스(Cory Williams) 교수와 산림청 로키 마운틴 연구소의 헬렌 츠무라(Helen Chmura) 박사 연구진은 26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알래스카 영구 동토층에서 사는 북극땅다람쥐(학명 Urocitellus parryii) 암컷이 수컷보다 최대 10일 먼저 동면(冬眠)에서 깨어난다”고 밝혔다.

◇25년간 땅다람쥐 체온과 기온 측정

북극땅다람쥐는 혹독한 알래스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 년의 절반 이상을 동면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폐와 심장, 뇌 등 신체 각 부분의 기능을 급격히 줄여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 그렇지만 동면 중에 신체 조직이 얼어붙지 않도록 몸에 미리 저장해둔 지방을 태워 열을 낸다. 봄이 되면 땅다람쥐는 굶주림에 지친 상태에서 90㎝가 넘는 깊이의 굴에서 나와 짝짓기를 시작한다.

윌리엄스 교수 연구진은 알래스카의 두 지점에서 장기간 대기와 토양 온도를 측정한 자료를 수집했다. 북극 지역의 온난화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츠무라 박사는 “그동안 측정 자료에 따르면 알래스카 영구 동토층 위의 활동층(active layer: 해마다 해동과 동결을 반복하는 상부 지층)은 온난화로 가을에 늦게 얼고 한겨울에도 이전만큼 춥지 않으며 봄에 일찍 녹았다”며 “불과 25년 만에 토양이 1m 깊이에서 얼어붙는 시간이 약 10일 정도 단축되는 변화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동시에 25년 동안 땅다람쥐 199마리가 동면을 하는 동안 체온을 측정한 자료도 분석했다. 이를 기온과 토양 온도 측정치와 비교했다. 분석 결과 북극 땅다람쥐 암컷은 알래스카에서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해마다 동면에서 깨어나는 시기가 달라졌지만, 수컷은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암컷은 25년 전보다 10일이나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일반적으로 수컷은 봄철 짝짓기를 준비하기 위해 암컷보다 먼저 동면에서 깨어난다. 수컷은 겨울 동안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매년 다시 짝짓기를 할 만큼 성적으로 성숙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컷이 먼저 동면에서 깨어나 짝짓기에 맞는 몸을 만들고 암컷을 맞는 것이다. 그런데 온난화가 이 과정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 어린 북극땅다람쥐가 먹이를 먹고 있다./미 콜로라도 주립대

◇먹이는 많아지지만 짝짓기는 불리

동면 시기의 변화는 장단점이 있다. 우선 암컷은 동면이 짧아지면서 지방 소비를 줄일 수 있다. 봄에 일찍 깨어나면 먹잇감인 식물 뿌리와 새싹, 열매, 씨앗을 더 빨리 찾기 시작할 수 있다. 에너지를 덜 소비한 상태에서 먹이를 더 많이 구하면 자연 더 건강한 새끼를 낳고 이들의 생존율도 높아질 수 있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단점은 암수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달라지면 짝짓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암컷은 겨울잠에서 먼저 깨어나 한동안 수컷 없이 지내야 한다. 그 사이 여우나 늑대, 독수리 같은 포식자에게 노출돼 잡아 먹힐 위험도 커진다. 수컷이 뒤늦게 겨울잠에서 깼는데 암컷은 이미 사라졌을 수 있다는 말이다.

북극땅다람쥐는 아직 개체군 감소 조짐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북극땅다람쥐를 멸종 위험이 낮은 관심대상(LC, Least Concern)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논문은 최근 새로 발생한 동면 시기 불일치가 땅다람쥐의 생존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람쥐 개체수가 감소하면 생태계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늑대부터 독수리까지 거의 모든 북극 포식자가 다람쥐를 먹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 교수는 “동면 시기의 변화가 개체군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직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지 않다”며 “이번 논문은 생태계가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해하려면 장기적인 관측 자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연구진은 1990년대에 북극 땅다람쥐가 춥고 어두운 겨울을 어떻게 견디는지, 동면 장소가 얼마나 추운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처음으로 영구 동토층의 토양 온도를 측정했다. 윌리엄스 교수도 15년 전 알래스카대에 있을 때 땅다람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츠무라 박사 역시 2018년부터 알래스카대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에 참여했다. 그는 “북극에서 앞으로 또 25년 동안 이번에 분석한 것과 같은 관측 자료를 계속 만들려면 훌륭한 연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f5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