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El Nino) 현상이 기후 변화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막대한 손실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올해 ‘슈퍼 엘니뇨’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더 큰 손실이 예상된다.
저스틴 맨킨 미국 다트머스대 지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엘니뇨가 발생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조달러의 소득 손실이 초래된다는 연구결과를 19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엘니뇨는 통상 2~7년 주기로 상대적으로 낮았던 열대 동태평양의 해수 온도가 6개월 이상 높은 상태로 지속하는 현상이다. 태평양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이 약해지면서 서태평양의 따뜻한 물이 동쪽으로 이동해 발생한다.
엘니뇨는 전 지구적으로 온도를 섭씨 0.2도 정도 상승시킨다. 동태평양의 따뜻한 해수가 막대한 양의 열과 수증기로 대기에 공급된 영향이다. 전 세계 강수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해수 온도가 높아져 수증기가 대기에 공급돼 저기압이 형성된 중앙·남아메리카 지역엔 폭우·홍수가, 고기압이 형성된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호주, 아프리카 등엔 가뭄이 들이닥친다.
연구팀은 엘니뇨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지속적인 신호’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 성장 둔화 원인으로는 파괴적인 홍수와 폭염, 가뭄, 열대성 질병, 식량 부족 등이 지목됐다. 연구팀은 1982~1983년과 1997~1998년에 발생한 엘니뇨 이후 세계 경제 활동을 2년 동안 조사했고, 엘니뇨 발생 이후 5년간 세계 경제에 막대한 손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1982~1983년 엘니뇨 발생 이후 5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4조1000억달러(5489조원), 1997~1998년 엘니뇨 발생 이후 5조7000억달러(7632조원) 수준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엘니뇨 발생 시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은 엘니뇨가 없을 때보다 3% 감소했고, 페루나 인도네시아 같은 열대기후 국가는 GDP가 10% 이상 감소했다.
맨킨 교수는 “엘니뇨와 같은 기후변화가 비용이 많이 들고 수년간 성장을 정체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심지어 기후변화의 불평등을 증폭시켜 회복력이 낮거나 준비된 사람들에게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올해는 ‘슈퍼엘니뇨’가 다가올 전망이다. 통상 엘니뇨는 서태평양과 동태평양의 수온 차이가 섭씨 0.5도인데, 온도 차가 1.5~2도 이상이면 슈퍼엘니뇨라고 본다. 기상청에 따르면 엘니뇨는 1951년 이후 총 23차례 발생했는데, 이 중 네 번은 슈퍼엘니뇨였다. 엘니뇨의 발생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4~6년 주기로 발생했는데, 2000년 이후로는 2~3년 터울로 나타나고 있다.
엘니뇨의 발생 주기가 짧아지고, 강도가 세지면서 세계 각지에서 이상고온이나 폭우, 가뭄 현상도 자주 나타난다. 이달 들어 한국을 포함해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는 예년보다 더운 날씨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는 40도가 넘는 폭염이 찾아와 역대 최고기온을 경신하기도 했다.
한반도는 엘니뇨가 발생하면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강수량이 증가한다. 동태평양 수온이 증가하면 한반도와 일본을 중심으로 일종의 저기압성 바람 통로가 만들어지는데, 남부지방 쪽으로 다량의 수증기가 유입된다. 슈퍼엘니뇨가 예상되는 만큼 올여름 한반도에는 폭우가 내리고 태풍도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맨킨 교수 연구팀도 올해 엘니뇨 발생으로 향후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와 슈퍼엘니뇨가 합쳐지면서, 2023~2029년 최소 3조달러(4017조원) 수준의 경제 성장 둔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21세기 동안 발생할 총 경제 손실은 84조달러(11경2476조원)으로 추산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발생할 정말 큰 엘니뇨는 잠재적으로 쌓여 있다”며 “이번 연구결과는 잠재적으로 최대 10년 동안 성장을 억제하는 주요 경제 피해가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f2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