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절차인 의료 자문 과정에서 자문 의사가 작성한 의견과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전달한 내용이 다르게 나타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환자·소비자단체는 보험사가 의료자문 내용을 변경하거나 축소해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한국소비자연맹(정지연 사무총장), 한국환자단체연합회(안기종 대표), 소비자시민모임(윤명 사무총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정진향 사무총장)로 구성된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는 20일 서울 한국소비자연맹 정광모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 "자문 원문과 통지문 내용 달라" 주장
이들은 보험금 지급 판단의 근거가 되는 의료 자문이 보험사 내부 전달 과정에서 변경·축소되거나 다른 내용으로 재구성됐을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보험금 지급 판단이 의료적 판단이 아닌 보험사의 내부 판단 구조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로 하지정맥류 수술 관련 내용을 제시했다. 자문 의사가 작성한 의견에는 "하지정맥류 치료 지침과 수술 특성상 1일 입원 치료는 적정하며 치료 목적과 합병증 예방 측면에서도 타당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환자에게 전달된 통지문에는 "외래 기반 단기 시술로 입원 필요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돼, 치료 필요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구가 추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 참석한 50대 여성 피해 소비자는 하지정맥 수술 전 보험사에 보장 여부를 확인한 뒤 치료를 받았으나, 이후 보험금 지급이 거절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재심을 요청해 별도의 의료기관에서 적정 치료라는 판단을 받은 뒤 보험금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한 달 이상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보험금을 받게 된 것은 처음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의료계 "반대 의미로 전달된 사례 확인"
김태식 대한정맥학회 이사장은 "자문의가 작성한 의료 자문 의견과 환자에게 전달된 결과 내용이 상반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유사 사례도 추가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보험사는 통상 자문의 의견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지만, 이번 사례는 중간 과정에서 내용이 변형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구조적 문제로 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상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도 "적절한 치료라고 판단한 자문의견을 보냈으나 환자 통지문에는 완전히 반대 의미로 기재돼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다른 사례에서 사용된 표현이 환자에게 불리하게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중개업체 또는 보험사에서 수정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 공동대표)은 "보험금 지급의 공정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 논의가 지속돼 왔지만 유사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보험금 지급 거절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소비자 불신이 커지고 있다"며 "부지급 사례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용진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 정책위원장(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은 "손해보험협회와 의료학회가 자문위원 풀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보험사들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감독원의 조사와 고발을 추진하고, 자문의견 수정 방지 시스템과 독립 심사 기구 설치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이번 사안을 단순 보험금 분쟁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규정하고, 제도 개선 요구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의료자문 원본 전면 공개 ▲자문의 실명제 도입 ▲보험사로부터 독립된 제3자 의료심사·심의 기구 설치 ▲자문서 수정·편집 금지 및 이력 공개 ▲금융당국의 부지급 보험 전수조사 착수를 요구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의료 자문이 객관적 심사 절차가 아니라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