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P-1 계열 당뇨·비만 치료제가 술과 담배는 물론 각종 마약 중독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GLP-1 계열 당뇨·비만 치료제들./게티이미지

비만 치료제로 술과 담배는 물론 대마초와 코카인 같은 마약에 중독되는 것까지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미 약물에 중독된 사람도 과다 복용 위험을 줄여 병원 입원이나 사망을 방지할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야드 알-알리(Ziyad Al-Aly) 미국 워싱턴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제2형 당뇨병을 가진 미국 퇴역 군인 60만명 이상을 분석한 결과,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치료제가 모든 주요 중독성 물질에 대한 위험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영국의학저널(BMJ)'에 발표했다.

2형 당뇨병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이 분비되지만, 인체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발생한다. 주로 성인이 걸리며 환자는 비만이거나 과체중인 경우가 많다. 소아 환자가 많은 1형은 인슐린 호르몬이 아예 분비되지 않는 경우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진은 퇴역 군인 60만명을 조사해 GLP-1 계열 당뇨·비만 치료제기 술과 담배는 물론 코카인과 대마초, 오피오이드 등 각종 마약까지 중독을 줄이는 효과를 확인했다./미 워싱턴대 의대

◇술·담배·마약 중독 위험 모두 조사

연구진은 2형 당뇨병을 가진 퇴역 군인 60만6434명의 건강 기록을 분석했다. 이들은 이미 당뇨병 치료를 위해 GLP-1 계열 약을 쓰고 있었다. 연구진은 치료제를 투여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최대 3년간 건강 기록을 분석했다. 참가자들은 이미 술이나 담배, 마약 등 중독 물질로 인한 건강 문제가 있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구분됐다.

연구 결과, GLP-1 계열 약물은 약물 사용 이력이 없는 당뇨 환자에서 알코올 관련 장애 위험을 다른 당뇨병 치료제인 나트륨-포도당 공동수송체-2(SGLT2) 억제제 복용군보다 18% 줄였다. 대마초(14%), 코카인(20%), 니코틴(20%), 오피오이드(25%) 사용 위험도 낮췄다.또 GLP-1 비만 치료제는 이미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과다 복용 위험(39%)과 응급 치료(31%), 사망 위험(50%)도 줄였다.

GLP-1은 식후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췌장에서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올리는 글루카곤을 억제한다. 원래 혈당을 줄이는 당뇨병 치료제로 나왔다가 체중 감량 효과가 확인되면서 비만 치료제로 발전했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티르제파타이드)가 그런 사례다.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는 뇌에서 식욕을 줄이고 음식이 위를 떠나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높여 체중을 줄인다.

그동안 의학계에서는 당뇨·비만 환자들이 GLP-1 계열 치료제를 쓰고 나서 알코올과 니코틴에 대한 욕구가 줄었다는 보고가 잇따라 나왔다. GLP-1 계열 비만약과 약물 치료나 알코올·대마초 사용 장애,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 알코올 관련 입원 위험 감소 사이의 연관성도 잇따라 확인됐다.

하지만 기존 연구들은 중독 물질을 각각 개별적으로 조사했을 뿐이다. GLP-1 계열 약물이 전반적으로 물질 중독을 예방하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번에 추적 관찰한 퇴역 군인들은 GLP-1 계열 당뇨병 치료제인 노보 노디스크의 오젬픽(세마글루타이드)와 일라이 릴리의 삭센다(리라글루타이드), 트루리시티(둘라글루타이드)를 쓰고 있었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진에 따르면, 당뇨병 치료를 위해 GLP-1 치료제를 투여한 환자들은 다른 약물을 쓴 환자보다 약물 사용 장애 신규 발병 사례가 1000명 당 7건, 약물 사용 관련 사고가 12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미 워싱턴대 의대

◇중독 예방 원리 밝히려면 임상시험 필요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약리학자인 카일 시몬스(Kyle Simmons) 교수는 "약물 사용과 연관된 사망률 감소는 매우 놀랍고 고무적이었다"며 "특히 이번 연구는 GLP-1 치료제 투여군와 다른 약물을 투여한 대조군을 포함한 것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시몬스 교수는 "두 종류 약물 모두 당뇨병과 전신 건강에 긍정적 효과를 발휘한다"며 "GLP-1 투여군에서 중독 방지 효과가 나타난 것은 일반적인 건강 혜택보다는 뇌에 약물이 작용한 결과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GLP-1 계열 치료제들이 뇌에서 쾌감을 강화하고 갈망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사용하는 뇌 회로를 억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영국 약사회장인 클레어 앤더슨(Claire Anderson) 노팅엄대 교수도 "이번 연구는 GLP-1 계열 약물이 보상 및 중독과 관련된 뇌 경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탐구할 새로운 연구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GLP-1 비만약이 약물 중독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원리를 밝힌 것은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다.

앤더슨 교수는 "이번 연구는 관찰 연구여서 해당 약물이 중독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았다"며 "GLP-1 약물이 직접적인 효과를 가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임상시험을 포함한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있는 의학연구위원회(MRC) 당뇨병·대사장애 예방팀의 마리 스프레클리(Marie Spreckley) 박사도 "이번 결과는 생물학적으로 타당하지만 아직 가설 생성 단계로 간주돼야 한다"며 "해당 약물들을 물질 사용 장애 치료제로 고려하기 전에 무작위 대조 시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BMJ(2026), DOI: https://doi.org/10.1136/bmj-2025-086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