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남성 A씨는 집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뒤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반복된 심정지와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담당 의료진은 그가 '임종 과정'에 있다고 판단했다. A씨가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는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런 줄 몰랐다"며 치료를 이어가 달라고 요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한 환자에게 보험료 할인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언급했지만, 의료계에서는 "연명의료 문제를 재정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연명의료 정책의 핵심은 '덜 받게 하는 유인'이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숙고해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으며, 이런 구조가 갖춰질 때 윤리적 논란은 줄고 의료비 절감 효과도 자연스럽게 뒤따를 수 있다고 말한다.
복지부 역시 신중한 입장이다. 복지부 핵심 관계자는 "연명의료 문제는 '존엄한 죽음'이라는 윤리적·도덕적 측면에서 먼저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명의료와 관련된 건보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겠지만, 인센티브 형태로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연명의료, 왜 '돈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나
연명의료를 둘러싼 재정 부담은 수치로만 보면 분명하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처럼 고령 사망자의 약 70%가 연명의료를 받을 경우 건강보험 연명의료비 지출은 2030년 3조원에서 2070년 16조9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연명의료를 받는 고령 사망자 비율이 15% 안팎으로 낮아지면, 2070년 연명의료비는 3조6000억원까지 줄어든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재정을 절감할 수 있는 영역'으로 보기는 어렵다. 연명의료 결정은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판단 단계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비를 거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선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의학적으로 쉽지 않다. 생애 말기 진단 이후에도 상태가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연명의료 중단이 허용되는 시점을 현행 '임종 과정'에서 '말기'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의뢰로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연구에선, 관련 의학회 27곳 중 22곳(81.5%)이 연명의료 중단 시점을 앞당기는 데 찬성했다. 같은 취지의 법 개정안도 지난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돼 있다.
의료진이 불가역적인 임종 과정을 확인하고 환자의 의사까지 확인했더라도, 결정이 곧바로 이행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가족 반대로 연명의료가 계속되는 일이 적지 않다. 미국에는 이를 빗댄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 증후군(Daughter from California Syndrome)'이라는 용어까지 있다. 평소 왕래가 없던 자녀가 뒤늦게 나타나 부모에게 가능한 모든 치료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이런 갈등이 의료진에 대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덜 받게 하는 정책보다, 선택할 수 있게 해야"
전문가들은 충분한 정보 제공과 숙의 없이 관성적으로 이어지는 연명의료가,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무관하게 지속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는 "이미 충분한 치료가 이뤄졌음에도 심폐소생술이나 중환자실 치료를 반복하는 것은 의학적 효용이 낮은 의료행위로, 의료 자원의 낭비에 가깝다"며 "현행 법 체계에서는 연명의료를 계속 받고 싶어하는 사람을 제도적으로 제어하기 어렵고, 바로 이 지점에서 건보 재정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에 인센티브를 결부할 경우, 환자의 자기결정을 돕기보다 오히려 결정을 특정 방향으로 밀어붙일 위험이 있다고 봤다. 그는 "지금도 많은 환자들이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 봐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하는데, 여기에 경제적 인센티브까지 더해지면 생명에 대한 숙고보다 비용과 부담 같은 2차적 요인이 앞서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연명의료를 고민하는 환자 상당수가 고령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노인 빈곤과 노인 자살 문제가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내가 죽는 것이 모두에게 낫다'는 결론으로 내몰릴 위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인센티브가 환자의 생애 말기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 교수는 "아직 구체적인 설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보험료 할인 방식의 효과는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시점과 실제 사망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만큼, 그 사이 환자들이 원하는 것은 비용 절감이 아니라 1인실 이용이나 돌봄 지원 같은 서비스"라고 말했다. 그는 "재정을 투입한다면 그런 공백을 메우는 데 쓰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했다.
현재 이를 뒷받침할 국내 완화의료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다. 중앙호스피스센터의 '2024 국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호스피스 병상 수는 1815개로 인구 100만명당 28개에 그친다. 유럽완화의료협회(EAPC)가 권고하는 기준인 100만명당 50개의 절반 수준이다.
이용 대상 질환도 제한적이다. 현행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은 호스피스 이용 대상을 암,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환자가 결정했을 때 의료비는 줄고, 호스피스는 늘었다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구조가 실제로 의료 이용과 비용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임민경 연구원은 최근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경우와, 가족이 대신 결정을 내린 경우를 비교한 결과 생애 말기 의료비와 의료 이용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해당 분석은 2023년도 국민건강정보DB를 활용해 연명의료 중단·보류 결정과 생애 말기 의료비의 관계를 환자 결정군과 가족 결정군으로 나눠 살핀 것으로, 같은 해 사망자 중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이용한 비율은 전체의 약 19.9%였다.
분석 결과, 사망 전 1개월 동안의 의료비는 가족 결정군이 1211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경우는 1023만원,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경우는 857만원으로 낮아졌다. 연명의료비가 전체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가족 결정군이 9.4%로 가장 높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군과 연명의료계획서 작성군은 각각 7.4%, 4.9%에 그쳤다. 중환자실과 응급실 이용률 역시 가족 결정군에서 각각 36%, 71.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환자가 직접 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호스피스 이용률이 크게 높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44.5%,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경우는 23.9%로, 가족 결정군(9.1%)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임 연구원은 "처방받은 연명의료 행위 종류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생애 말기 의료비는 평균 32.9% 증가한다"며 "심폐소생술이나 혈액투석 등 주요 연명의료 행위의 처방 비율 또한 환자 결정군에서 낮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가 자기 의사를 분명히 할수록 치료 강도는 낮아지고, 삶의 질을 중심으로 한 완화의료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