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앞이 식사를 기다리는 노인들로 붐비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4년 12월 23일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주민등록 인구(5122만1천286명)의 20%를 차지했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가운데 정부가 노인 연령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이는 방향을 검토한다. 초고령 사회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것을 말한다. 취약계층 생계·의료비 지원도 강화한다. 이를 위해 생계급여를 4인 가구 기준 월 11만8000원 인상하고, 의료급여 수급자 소득 산정시 포함하는 부양비 부과 비율도 기존 15~30%에서 10%로 낮춘다. 16년만의 변화다.

정부는 지난해 의대 증원 정책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으로 꼬인 실타래를 풀고, 지역·필수의료 위기 극복을 위한 의료 개혁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의료인력 수급 추계 과정과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을 위해 ‘직종별 인력수급 추계기구’를 구성·운영한다. 의사·간호사부터 시작해 치과의사·한의사·약사 순으로 직종별 인력수급 추계기구를 구성해 추계를 실시할 계획이다. 대학 입학 정원 등 직종별 인력 조정의 근거가 될 예정이다. 수련수당을 확대하는 등 전공의 수련에 대한 국가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등 전공의 근무 여건 개선도 본격화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새해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10일 발표했다. 복지부는 올해는 ‘국민이 행복하고 건강한 복지국가’를 비전으로 네 가지 핵심 과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40년 이상 굳어진 ‘65세=노인’ 공식 깬다

복지부는 이날 65세로 굳어지다시피 한 노인 연령 기준을 70세쯤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노인이 65세부터라는 인식은 지난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의 경로우대 대상 연령부터 시작됐다. 이후 주요 복지제도의 연령 기준도 대체로 65세 이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기대수명이 66세였지만, 2022년에는 노인 수명이 82.7세로 늘었다”며 “노인 실태조사 결과 노인, 어르신들이 생각하는 노인 연령도 71.6세였다”고 했다.

이렇게 정부가 노인 연령 기준 상향에 나선 것은 향후 급격하게 늘어날 노인 인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12월 23일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를 넘어선 것이다. 고령사회 진입 이후 7년 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노인이 많은 나라로 알려진 일본(10년)도 제쳤다. 2050년쯤이면 국내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으로 늘어나는 노인인구를 현재 국가 재정으로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연금개혁이 대표적이다. 이 차관은 “현재의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2041년도에 수지적자 발생이 예상되고 2050년쯤에는 자금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금도 매일 885억원의 국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보험료율은 13%, 소득대체율은 42%까지 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차관은 “법·제도에 대한 개정보다는 사회적인 논의가 먼저 해나갈 예정”이라며 “어떻게 해야 우리가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논의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 병원 응급실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근무시간 주 80→72시간…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복지부는 전문의가 되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며 수련받는 전공의의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작업도 본격화한다. 정부는 전공의 수련 수당을 확대하고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 80시간에서 72시간으로 줄이는 단축 시범 사업을 추진한다. 총 8개 진료과목 전공의와 2개 분야 전임의에 대한 수련 수당을 총 415억원 지원한다. 2332억원 규모의 전공의 수련 환경 혁신 예산도 신설했다.

의료사고 특화 형사체계 구축도 추진한다. 응급, 심뇌, 분만, 중증 소아 영역의 의사가 부족하고, 젊은 의사들이 전공을 기피하는 주요 이유가 의료사고에 따른 분쟁·소송 부담이다. 정부는 가칭 ‘환자 대변인 제도’를 신설해 의료사고 분쟁조정제도를 개선하고, 환자의 권리구제를 강화할 계획이다. 가칭 ‘의료사고심의위’를 신설해 수사 절차 개선과 필수의료 중과실 중심의 기소 체계로 전환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이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조 전환도 본격화한다. 지역 완결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취지다. 이를 위해 지역종합병원을 집중 지원하고, 화상·뇌혈관 등 필수진료 분야 중심으로 전문병원도 재편한다. 예산 812억원을 투입해 국립대병원 등 권역 책임의료기관의 지역 필수의료 중추 역할 확립을 강화한다. 국립대병원 연구 인프라 확충 예산은 110억원이다. 지역 거점 공공병원에 필수의료 운영비·시설·장비를 지원한다.

역량 있는 전문의의 지역 장기 근무를 유도하고자 ‘지역필수의사제’ 시범사업도 실시한다. 지역 필수 의사 규모는 96명으로, 정부가 월 400만원 근무수당을 지원한다. 또 전공의 지역 배정을 확대하고, 지역·필수의료체계에 대한 안정적 투자를 위해 필수의료 특별회계 설치도 추진한다.

◇과잉·남용 비급여 관리, 출산·양육부담 경감 대책도

치료에 꼭 필요한 비급여는 급여로 전환하고, 과잉·남용이 우려되는 비급여는 가칭 ‘관리급여’로 편입해 가격과 진료기준에 대한 관리를 실시한다.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210일에서 150일로 단축하는 시범사업도 추진한다. 재택 중증 소아 요양비와 장애인 보조기기 품목 지원 확대도 추진한다.

미래 의료비 부담을 절감하기 위한 예방적 건강 관리도 강화한다. C형 간염 등 적기 치료가 중요한 주요 질환에 대한 첫 진료비 본인 부담을 면제해 확진 검사 비용 지원을 늘린다. 사회복지시설 등의 입소자 대상으로 출장 건강검진도 도입한다. 의원급 의료기관이 지속적인 통합 건강관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출산과 양육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도 실시한다. 복지부는 지역·혼인여부 등과 관계없이 모든 20~49세 남녀를 대상으로 필수 가임력 검사비 지원을 실시하기로 했다. 영구 불임이 예상돼 가임력 보존이 필요한 경우를 위한 생식세포 동결·보존비 지원도 신설한다. 여성은 200만원, 남성은 30만원이다.

자연분만과 동일하게 제왕절개 비용을 본인부담 기존 5%에서 0%로 바꾸고, 산후조리원 서비스 질 제고를 위한 평가 의무화와 결과 공표도 추진한다. 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를 기존 10개소에서 12개소로 늘리고, 산전·후 우울증을 겪는 부부에 대한 심리·정서지원도 강화한다. 노인일자리(5000개)를 통해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초등 돌봄을 위한 다함께 돌봄센터도 기존 1203개소에서 1372개소로 늘린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생명을 살리는 의료개혁의 가시적 성과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설 연휴 대비 응급의료체계 유지 특별대책을 마련하는 등 비상·응급의료체계 유지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의료체계 정상화와 의정갈등 해소를 위한 의료계 대화·설득 노력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 아인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들을 돌보는 모습. /뉴스1

◇보건의료 R&D 예산 1조원 투자

보건복지부는 올해 보건의료 연구개발(R&D)에 전년 대비 17% 증가한 약 1조원을 투자한다. 도전·임무형, 국제공동연구 중심으로 보건의료 R&D체계를 개편한다. 산업별 핵심 규제도 혁신한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기준을 개편하고, 시장즉시 진입 가능 의료기술 제도를 오는 9월 시행한다. 외국인환자 유치를 위해 유치경로 실태조사를 상반기 중 제도화하고 ‘K-의료 해외진출 활성화 전략’도 세울 방침이다.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의료데이터·첨단재생의료도 활성화한다. 건강정보 고속도로를 전국 상급종합병원과 연계 완료하고, 국가 통합바이오 빅데이터 참여자 모집 규모도 기존 1만9000명에서에서 19만명 수준으로 대폭 확대한다. 안전한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에 기반한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가칭디지털헬스케어법’ 제정도 추진한다. 희귀·난치질환 극복을 위한 첨단재생의료 치료제도 오는 2월 시행하고자 사전심의, 비용·이상반응 보고 등 관리 체계를 구축한다.

보건복지부 2025년 주요 업무 계획 그래픽. /보건복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