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非)중증·비급여 치료에 대한 보장을 줄이고, 보험 가입자(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대폭 올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비급여 관리·실손보험 개혁안’을 발표하자, 의료계와 금융 소비자(환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주최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 방안’ 정책 토론회 현장 곳곳에서 청중들의 항의가 터져 나왔다.
정부는 도수 치료, 영양 주사 같은 비(非)중증·비급여 치료를 ‘관리 급여’로 지정하고, 본인 부담률을 현행 평균 20%에서 90% 이상으로 대폭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비중증·비급여 보장을 축소하고 중증 중심으로 보장하는 5세대 실손보험을 마련해, 1~3세대 실손보험 상품 보유자들의 전환을 유도할 계획이다.
그동안 비급여 진료를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한 급여 항목과 병행 진료하는 사례도 많아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환자 본인 부담률을 높여 소위 의료 쇼핑과 과잉 진료 행태를 개선하려는 취지다.
하지만 소비자와 의료계는 소비자 권리를 제한하고, 정책 부작용 등을 이유로 우려 목소리를 냈다.
암 환자이자 1세대 실손보험 상품 가입자라고 밝힌 한 청중은 “보험사들은 지금도 중증 환자에 대한 보장 확대를 1년 이상 안 해주려 한다”며 “예기치 않은 사고, 큰 질병으로 목돈이 들어갈 것을 대비해 경제적 혜택을 받으려고 민간 보험회사 실손보험 상품을 계약하는 것인데, 왜 정부가 나서서 4세대, 5세대 보험 전환을 주도하며 소비자의 권리와 혜택을 제한하느냐”며 항의했다.
의료계 인사들은 정부가 규제 항목을 ‘과잉·남용’ 비급여로 규정한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지영건 차의과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기준도 확고하지 않은데 실손 보험사에 도움이 되는 항목들을 ‘남용’이라며 병행 진료 금지 항목으로 넣으면 기분 나쁘지 않겠냐”며 “병행 진료하던 항목이 괜히 오해받지 않도록 먼저 전략적으로 왜 병행 진료가 필요하고 불필요한지,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문술 부평세림병원장은 “정부가 대표 예시로 든 도수치료 등을 필수 의료로 규정할 수는 없더라도, 의료상의 필요도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원장은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대부분 비급여 항목 상위 랭킹에 근골격계 질환이 집중된 것은 단순한 도덕적 해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치료가 생김으로써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훈 대한한방병원협회 보험이사는 “그동안 제외돼 왔던 한방, 치과 비급여도 보상 대상으로 확대된다면 5세대 가입 유도에 획기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환자 본인 부담률이 50%인데 비중증, 비급여 남용을 너무 과도하게 걱정해 자꾸 축소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다면 정책의 실효성을 잃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