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철새와 닭·오리, 젖소를 중심으로 고병원성(H5N1)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이 바이러스에 걸린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처음 나왔다. 미국 내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국 보건부는 6일(현지 시각) 루이지애나주에서 H5N1에 걸려 입원했던 환자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65세 이상의 고령인 이 환자는 기저 질환을 앓고 있었다. 지난달 뒷마당의 닭과 야생 조류에 노출된 뒤 바이러스에 감염돼 심각한 호흡기 질환으로 위독한 상태였다. 미 보건부는 사망자와 접촉한 사람 중 추가 감염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가금류와 야생 조류에 퍼진 H5N1 바이러스가 사람까지 옮겨가면서 미국 내 공포가 커지고 있다. H5N1 바이러스는 인체 감염 위험이 가장 큰 조류인플루엔자인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이종이다.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 단백질이 각각 5형, 1형이어서 H5N1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HA는 바이러스가 사람 호흡기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 역할을 하며, NA는 증식 후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해준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총 67건의 H5N1 인체 감염 사례가 기록됐고, 이 가운데 1건을 제외한 모든 사례가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했다. 2003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45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미국에서 이 바이러스로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사망한 미국인의 바이러스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결과, 미국 젖소에서 유행하고 있는 H5N1과는 다른 유형의 바이러스로 확인됐다. 젖소 바이러스는 유전자형 B3.13이지만, 사망자가 감염된 바이러스는 야생 조류에서 순환하는 D1.1 유전자형 바이러스였다. 이는 지난해 11월 캐나다 10대 청소년을 중태에 빠뜨린 감염 바이러스와 같은 유형이다.
전문가들은 이 D1.1형 바이러스가 특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한다. 미국 세인트 주드 아동연구병원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동물인플루엔자생태학 연구협력센터의 리처드 웹비(Richard Webby) 소장은 “D1.1형 바이러스는 젖소의 바이러스와 다른 뉴라미니디아제 유전자가 있다”며 “이런 변화는 헤마글루티닌의 돌연변이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웹비 소장은 또 “이 바이러스의 계보를 25년 동안 연구해 왔는데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 중 가장 위험한 형태”라며 “이 바이러스가 치명적인 감염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놀랍지는 않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H5N1을 만드는 두 단백질이 모두 변이가 발생하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의 폐 세포에 결합해 침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만약 H5N1 바이러스가 유전자 변이를 거쳐 사람들을 쉽게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제2의 팬데믹을 일으킬 수도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아 새똥 분석 연구 프로젝트를 40년째 진행 중인 세인트주드 아동연구병원 연구진은 최근 두 달 동안 물오리떼에서 D1.1을 발견했으며, 이는 두 개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같은 동물에 침투한 뒤 서로 유전자를 교환한 재조합 바이러스라고 보고 있다. 연구진은 D1.1 유전자형 바이러스가 캐나다 중부를 통과해 미시시피강을 따라 멕시코만까지 이어지는 미시시피 철새 이동 경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