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대형 병원의 새해 주요 과제로 ‘분원 설립’ 추진이 떠올랐다. 대학병원 유치가 숙원 사업인 지자체들이 추진 속도를 내는 것인데, 원자재 가격 등 건축비 상승 부담과 함께 의정 갈등 장기화로 경영난이 심화하고 있어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각각 시흥 배곧과 인천 청라에 병원 설립 공사 첫 삽을 뜰 계획이다. 그동안 건설 공사비 상승 부담과 의대 증원 정책에 따른 의정 갈등 장기화로 사업 추진이 불투명했는데, 각 지자체 주도로 다시 시동이 걸린 것이다.
우선, ‘시흥 배곧서울대병원’ 건립 공사가 올해 첫 삽을 뜰 예정이다. 시흥시는 서울대병원과 현대건설(000720)이 공사 계약을 체결해 이달 사업설명회와 인허가를 위한 행정절차를 거쳐 2029년 개원을 목표로 착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흥시와 서울대병원이 2019년 5월 병원 설립 협약을 맺은 지 5년여 만이다. 병원은 연면적 11만7338㎡에 지하 2층, 지상 12층 총 800병상 규모로 건립될 계획이다. 당초 2027년 개원이 목표였으나, 목표 시점이 밀렸다.
배곧서울대병원 건립 사업은 2019년 5월 병원 설립 협약 체결을 시작으로 2021년 4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며 추진됐다. 2022년 3월 시흥 배곧서울대병원 기본계획 수립을 완료하고, 입찰 공고를 추진했지만 입찰 공고에 응한 건설사가 없었다. 당시 시흥시가 제시한 공사비는 3781억여원이다. 3.3㎡당 1000만원 정도로 책정된 건데, 건설업계에선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올랐는데 공사비가 너무 낮게 책정됐다는 반응이었다.
시흥시는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지자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국회와 서울대병원·서울대에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요청했다. 이후 2023년 9월 물가 변동분 571억원을 증액 반영해 5883억원으로 사업비가 늘었다. 서울대가 4295억원을 부담하며 국비 1588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인천 청라의료복합타운에 짓는 서울아산병원청라 건립 공사도 올해 착공될 전망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지난달 28일 인천시청에서 인천시 서구 청라의료복합타운 사업자인 청라메디폴리스PFV, 서울아산병원과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청라의료복합타운 사업은 청라국제도시 투자유치 용지 2블록 26만336㎡(7만 8000평) 규모에 총사업비 2조4040억원을 들여 조성하는 사업인데 10년째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이 부지 내 800병상 규모로 병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올해 말 착공해 2029년 개원이 목표다. 이와 함께 한국학기술원(KAIST) 연구소, 하버드의대(MGH) 연구소, 창업교육시설인 라이프사이언스파크 등이 입주할 예정이다.
2022년 12월 착공한 인천 송도세브란스병원은 2026년 말 개원이 목표다. 인천 송도7공구 연세대 국제캠퍼스 내 면적 8만5800㎡에 8800억원을 투입해 지하 3층, 지상 15층 800병상 규모로 조성된다.
의료계에선 분원 건립을 두고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지난해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 전임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면서 입원과 수술이 크게 줄어 경영 실적이 악화하고 있어, 분원 개원에 따른 경영난이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 노조 관계자는 “개원 초엔 적자가 불가피하다”며 “의정갈등으로 비롯된 의료수익 적자가 계속 이어지면 분원을 운영하는 데 부담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주요 병원들이 추진해 온 병원 건립 사업이 무산되기도 했다. 가천대 서울길병원이 2027년 위례의료복합용지에 들어설 예정이었는데, 길의료재단·미래에셋증권·호반건설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지난해 9월 이후 분납 토지 대금 975억원을 미납하며 우선협상대상자 지정이 취소됐다. 명지의료재단이 2002년 5월 충남개발공사와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추진한 종합병원 건립 사업도 최종 무산됐다. 재단이 지난해 12월 17일까지 중도금을 내야 했는데, 이를 내지 않아 충남개발공사가 해지 통보를 했다. 계약금 36억원을 제외한 중도금 160억원을 재단에 환급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대학병원 분원을 건립하고 운영하기에 적절한 시기는 아니다”라며 “완공까지 시차가 있으니 일단 첫 삽은 뜨는 것인데 부담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정 갈등 이전 의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던 시기에 개원한 이대서울병원의 경우 연간 400억원 규모의 적자가 났다”며 “결국은 돈 문제인데, 준비금이 충분한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병원장들은 정부의 각종 지원과 수가 인상 등을 반영하더라도 올해도 적자 경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등 빅4병원의 2024년 상반기 당기순손실은 약 2135억원에 달했다. 금기창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 따르면, 의정 사태로 인해 연세의료원은 지난해 의료수익은 1200여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