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성인 비만율이 최근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위고비·젭바운드 등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약이 출시된 결과라는 것이다. 다만 대규모 감염병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 비만약을 비만율 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단정짓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벤자민 레이더(Benjamin Rader) 마취과 교수 연구진은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 전 지역 성인 약 1700만명에 대한 건강 보험 데이터 약 4800만건을 수집·분석한 결과, 그간 꾸준히 증가해온 비만율이 2021년 46.2%에서 2022년 46%, 2023년 45.6%로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2023년 평균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도 30.21로 떨어지져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BMI 30 이상을 비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13일(현지 시각) ‘미국의사협회지(JAMA) 건강포럼’에 게재됐다.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비만 신약 출시를 체중 감소세의 주요 배경으로 봤다. 위고비·젭바운드 등 GLP-1 계열의 체중 감량 약물은 임상시험을 통해 체중을 줄이고, 장기간 유지할 수 있다는 효능이 입증됐다. 그동안 미국 성인 8명 중 1명이 위고비·젭바운드를 사용했다.
앞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10월 미국 국민건강 영양조사(US National Health and Nutrition Examination Survey) 결과를 통해 성인 비만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성인 비만율은 2000년 30.5%에서 2020년 41.9%로 증가한 이후, 2021~2023년 약 2%포인트 하락한 40.3%로 나타났다. CDC는 이번 조사에 임상 현장에서 검진을 통해 체중과 신장을 측정한 데이터를 사용했다.
위고비·젭바운드는 인체 호르몬인 GLP-1을 모방한 약물이다. 위에서 음식물을 소화하는 속도를 늦춰 포만감을 느끼고 식욕을 억제해 체중을 감량하는 효과를 낸다. 두 조사 결과 모두 비만율 감소세의 정확한 인과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연구진은 그 시기가 GLP-1 계열 비만약들이 출시된 때와 비슷했다는 점에서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는 GLP-1 유사체로 2017년 당뇨병약(오젬픽)을 개발해 FDA에서 승인받았다가, 체중 감량 효과가 나오자 비만약 위고비로 발전시켜 2021년 6월 미국에 출시했디. 미국 일라이 릴리 역시 GLP-1 유사체로 2022년 당뇨 치료제인 마운자로를 먼저 출시하고, 2023년 11월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를 출시했다.
연구진은 추적 기간 동안 미국 남부 지역의 비만율이 가장 크게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이 역시 비만약이 비만율 감소와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남부 지역은 미국에 GLP-1 계열 비만약들이 출시된 이후 가장 많은 처방이 이뤄진 지역이었다.
레이더 교수는 “가장 눈에 띄는 비만율 감소는 남부 지역에서 나타났으며, 동시에 남부 지역은 GLP-1 계열 약품의 처방·조제율이 6.0%로 가장 높았다”고 말했다. GLP-1 계열 약품 처방율은 남부 다음으로 중서부(5.1%), 북동부(4.4%), 서부(3.4%) 순이었다.
물론 GLP-1 계열 약물의 등장이 비만율 감소의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연구진은 “특히 남부 지역의 비만인 사람들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망자가 비교적 많았다”며 “코로나19가 비만인 사람에게 더 치명적인 만큼, 팬데믹(감염증 대유행)도 비만율 감소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고 자료
JAMA Health Forum(2024), DOI: https://www.doi.org/10.1001/jamahealthforum.2024.3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