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진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원리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당뇨 치료제로 개발된 위고비가 어떻게 식욕을 조절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지 찾았다. 최 교수의 연구 덕분에 위고비는 날개를 달았고, 전자약이나 디지털 치료제와 연계한 새로운 치료법도 나오고 있다.
위고비가 등장하면서 비만과의 싸움이라는 오랜 전쟁에서 인류가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인류는 비만을 완전히 정복하는 게 가능할까. 최 교수의 대답은 “‘완전히’를 뺀다면 가능하다”였다. 조선비즈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개최한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HIF 2024)’의 특별강연자로 나선 최 교수를 직접 만나 비만 치료제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최 교수는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호르몬을 모방한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이 GLP-1 유사체가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신경세포를 조절해 사람의 식욕을 떨어지게 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최 교수는 “GLP-1이 높아지면 살이 빠진다는 결과는 쥐나 사람 모두에게서 관찰됐고, 다만 그게 우리 뇌의 어디를 통하는 지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며 “우리 연구팀은 어떤 세포, 어느 수용체, 어떤 회로를 통해 GLP-1이 작동하는 지 증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뇨 치료제로 GLP-1이 쓰이기 시작한 지 20년이 됐다. GLP-1이 처음 발견된 게 1983년이고, 당뇨병 약으로 승인 받은 건 2005년이다. 하지만 당뇨 치료제로서 GLP-1 유사체는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 20년이 지나서 갑자기 비만 치료제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런 대기만성형 성공의 바탕에는 위고비를 개발한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 같은 제약사들의 꾸준한 투자와 연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GLP-1 유사체가 당뇨병 치료제로 나왔지만 처음에는 하루에 주사를 2번이나 맞아야 하는 등 먹는 약보다 불편한 점이 많았고, 이런 이유로 저평가됐다”며 “하지만 노보 노디스크가 당뇨병 대사질환을 잡겠다는 열정으로 꾸준히 투자하면서 최적화를 했고 그에 맞는 개발 전략을 세운 덕분에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보 노디스크가 문을 연 비만 치료제 시장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하나둘 뛰어들면서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인 미국 일라이 릴리가 비만 치료제 ‘젭바운드’를 내놓고 노보 노디스크와 경쟁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런 상황을 ‘서부 개척시대’에 비유했다. 그는 “GLP-1뿐만 아니라 GIP나 다른 호르몬 유사체들도 하나둘 등장하면서 비만 치료약의 옵션이 복잡해지고 있고, 큰 제약사 혼자서 커버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며 “서부개척 시대에 누군가가 먼저 금광을 발견했다고 해서 후발주자들이 캘 금광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비만 치료약 시장은 아직 레드오션(경쟁 시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 교수는 국내 제약사의 가능성도 높게 봤다. 최 교수는 한미약품(128940)이 GLP-1 유사체 계열 비만 치료약 시장에서 노보 노디스크, 일라이 릴리 같은 글로벌 제약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다른 제약사들이 돈 되는 거라도 하겠다고 할 때 한미는 혁신 신약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며 “전 세계 GLP-1 연구자들을 만나봐도 한미에 대해서는 노보 노디스크와 비슷한 평가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비만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인류가 비만을 통제할 수 있는 시대는 머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얼마 전 국제 공동 연구진이 초파리 성체(成體)의 완전한 뇌 세포 지도를 완성하면서 인간의 뇌 지도를 그리는 것도 이제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수록 GLP-1 같은 호르몬이 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인간의 뇌 지도가 나온다면 식욕과 비만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아무도 뚱뚱해지지 않고, 아무도 치매에 걸리지 않는 사회는 아니겠지만, 많은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약과 디지털 치료제의 발전도 비만과의 전쟁에서 인류에게 중요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는 한국전기연구원과 함께 전두엽 자기장 치료법을 사용해 식욕을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 교수는 “나는 GLP-1 연구자라기보다는 식욕과 비만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며 “지금은 GLP-1이 식욕에 대한 진단과 치료에 잘 듣기 때문에 연구를 하는 것이고, 전자약과 디지털 치료제도 마찬가지로 좋은 도구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