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뉴스1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가 ‘의대 모집 중지’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다시 깊어지는 모습이다.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도 앞두고 있어 의정 갈등이 다시 한 번 복잡한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22일 브리핑을 갖고 “의대 모집 중지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며 “3000명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갑자기 6000명, 7500명을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의협 비대위가 주장한 7500명은 올해 휴학을 선택한 의대 1학년 3000명에다 정부가 정원을 늘리면서 내년에 들어올 의대 1학년 학생 4500명을 더한 숫자다. 정원을 늘리지 않고 올해만큼 뽑더라도 내년에도 3000명이 들어와 6000명이 수업을 받아야 한다. 지금의 교육 인프라로는 이 정도 규모를 교육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예 신입생을 뽑지 말고 내년에 복학할 3000명만 교육하자는 이야기다.

박형욱 의협 비대위원장은 과거 세종대와 일본 도쿄대 사례를 들었다. 세종대는 1990년 학내 분규로 대규모 유급 사태가 벌어지자 이듬해 7개 학과만 신입생을 뽑고 24개 학과는 모집증 중지했다. 도쿄대도 1968년 학내 소요로 이듬해 신입생 선발을 건너 뛰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우리 사회는 입시만 중요하지 교육엔 진정한 관심이 없지 않나 생각한다”며 “의대에서 학생을 제대로 교육해 내보내지 못하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의사들이 배출돼 평생 환자를 진료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와 교육계는 의대 모집 중지는 현실성이 없다는 반응이다. 의협 비대위의 브리핑 이후 아직 보건복지부나 교육부가 공식 반응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입시는 우리 사회에서 워낙 중요하고, 법적 규정에 따라 예측 가능해야 하고 공정해야 한다”며 “그런 원칙에 비춰보면 의료계 주장은 정부로선 정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12월 초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도 의정 갈등의 양상을 복잡하게 만든다. 수려노한경평가위원회(수평위)는 12월 초에 내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 계획을 공고하고 수련병원별로 모집 절차를 개시할 예정이다. 수평위는 전공의 수련 정책과 제도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복지부에 설치된 심의기구다.

수련병원들은 이번 모집을 통해 내년 3월부터 근무·수련할 인턴과 레지던트를 뽑는다. 전공의는 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 등 수련 과정을 거친 뒤에 시험을 치러서 전문의가 된다.

이번 전공의 모집이 중요한 이유는 내년 상반기에 복귀하는 전공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지원율이 높으면 그만큼 많은 수의 전공의가 내년 상반기 의료 현장에 복귀한다는 의미다. 정부도 이를 알고 있는 만큼 지원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수도권 수련병원 정원을 유지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원래는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수련병원 배정 비율을 5.5대 4.5에서 5대 5로 바꾸려고 했지만, 내년에도 수도권 정원을 줄이지 않고 현행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특례를 적용해 내년 3월 복귀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공의는 사직 후 1년 내 동일 과목과 연차에 복귀할 수 없게 돼 있지만, 예외를 적용해 2~4년차 전공의도 내년 3월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미 올해 하반기에 한 차례 특례를 적용했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병역 의무를 마치지 않은 전공의가 복귀 의사를 표명하면 입대 시기를 연기해주는 방안도 있다. 전공의는 퇴직 시 병역법에 따라 입영 대상자가 되며 일반병으로 병역을 이행할 수 없다.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문제는 현재 사직한 전공의 중 의무사관후보생이 3000명에 달해 군 수요인 연간 1000명을 크게 웃돈다는 점이다. 이들이 모두 입영하는 데만 최대 4년이 걸릴 것이라는 게 병무청 예상이다.

의정 갈등을 둘러싸고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차기 의협 회장 선거가 어떻게 치러질지도 관심사다.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이 탄핵되면서 차기 의협 회장 보궐선거가 내년 1월 2~4일에 치러진다.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주수호 전 의협 회장 등이 출마를 선언하거나 준비하고 있고,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도 출마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