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으로 인해 들리는 환청(幻聽)을 디지털 아바타로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지난 28일(현지 시각) 환자에게만 들리는 환청 목소리로 대화하는 디지털 아바타를 만들어, 환청을 없애는 치료 효과가 있음을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실렸다.
조현병 환자들은 실제 없는 소리지만 귀에 들리는 것 같은 환청을 느낀다. 자기 마음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외부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경우 들리는 목소리 종류가 수십 가지나 된다. 환청은 환자에게 매우 강력하고 신처럼 전지전능하게 느껴진다. 현재 병원에서는 약물 치료와 인지 행동 치료를 하고 있지만 환자마다 효과가 다르다는 한계가 있다.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얼굴 생김새와 목소리를 환자 맞춤형으로 바꾼 디지털 아바타를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 하나는 환자와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고(요약형 아바타), 다른 하나는 환자의 과거 이력을 기반으로 좀 더 구체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확장형 아바타). 아바타로 환자가 자주 들었던 환청을 구현한 셈이다.
의료진이 말을 하면 아바타가 환자에게 전달하는 형식으로 치료가 이뤄진다. 아바타와 대화를 지속하면서 환자는 환청을 통제하는 방법을 연습한다. 이것을 반복하면서 환청을 줄이는 원리다. 연구진은 참가자 345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아바타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16주 후 환청에 대한 고통과 심각도가 임상적으로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기존 약물, 인지행동 치료보다도 훨씬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환청에 대한 고통을 점수로 나타냈을 때 요약형 아바타 치료는 1.05점, 확장형 아바타 치료는 1.60점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존 약물 치료는 1점 미만으로 떨어지는 데 그쳤다. 환청 발생 빈도를 점수로 나타냈을 때 요약형 아바타 치료는 2.04점, 확장형 아바타 치료는 2.32점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존 약물 치료는 1.5점 떨어지는 데 그쳤다.
또한 아바타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불안장애와 기분장애가 줄었으며, 삶의 질이 개선됐다. 28주 후까지는 환청이 들리는 빈도도 줄었다. 요약형 아바타보다는 확장형 아바타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서 치료 효과가 훨씬 크게 나타났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인 닉은 “2015년 병원에서 기존 치료를 받았을 때는 30~40가지 환청을 들었다”며 “아바타 치료를 통해 환청이 4~5가지로 줄었다”고 말했다.
주저자인 필리파 개러티(Philippa Garety) 킹스 칼리지 런던 임상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이날 영국 가디언에 “환청의 빈도와 심각도에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초의 치료”라며 “환청이 줄거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환자의 일상생활에 엄청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확장형 아바타는 환자가 설정한 다양한 목소리로 구체적인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환청 빈도를 줄이는 데 더욱 효과적”이라고 했다.
참고 자료
Nature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4-032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