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형 병원들이 쌓아둔 고유목적금 규모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공의가 떠나면서 경영난을 겪는 병원들의 경영난 해소를 위해 고유목적금을 경영 목적으로 일시 사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뉴스1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전공의 이탈로 인한 대형병원의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는 병원의 경영난을 돕기 위해 건강보험 급여비를 선지급하며 급한 불을 끄고 있으나, 정작 병원들은 수천억원 규모의 ‘고유목적사업준비금(고유목적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지아 국민의힘이 대학병원 25곳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5곳 중 18곳의 고유목적금은 평균 389억1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브란스병원은 고유목적금이 5551억5000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영남대 병원도 1757억8000만원으로 나타났다. 국공립병원인 서울대병원도 1939억원, 분당서울대병원 2717억원, 전남대 병원 350억원으로 큰 규모의 고유목적금을 보유 중이다.

고유목적금은 비영리법인이 건물과 토지 매입, 시설 투자, 교육 등의 목적으로 적립하는 돈이다. 고유목적금은 일종의 적립금임에도 비용으로 인정돼 법인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문제는 의대 증원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떠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으면서도 고유목적금이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과 영남대 병원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각각 118억4000만원, 203억5000만원 고유목적금이 늘었다.

정부는 의료 대란으로 병원의 적자가 늘면서 재정 지원을 늘리고 있으나, 정작 병원들은 돈을 쌓아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병원들에 건강보험 급여비를 선지급하고 있는데, 그 규모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만 해도 1조4843억원에 달한다.

대형병원들이 고유목적금을 계속 쌓아두는 이유는 외형 확대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학 병원들의 분원 설립이 이뤄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인천 송도, 서울아산병원은 인천 청라, 서울대병원은 경기 시흥에 분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외에도 고려대병원, 아주대병원, 인하대병원, 경희대병원 등도 분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다만 의료법상 병원은 비영리 법인으로 분류되는 만큼 미래 투자를 위해 고유목적금을 쉽게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유목적금은 경영상의 이유로 사용해서는 안되며, 의료 장비 개선을 위해서 준비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한지아 의원은 “병원들이 경영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적립한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인건비 등 결손 보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인세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