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뉴냅스 사옥에서 강동화 뉴냅스 대표(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은 환자가 비비드브레인을 12주간 치료받은 결과, 안 보이던 시야가 모두 회복되는 환자도 나왔다"며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통해 실제로 뇌 인근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도 확인했다"고 말했다./서울아산병원

“환자들에게 ‘그러려니 하세요. 적응하세요’라고 할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 좋아질 거에요. 믿고 한 번 해보세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졸중 전문의인 강경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있는 뉴냅스 사무실에서 이같이 말했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기능이 떨어지는 병이다. 뇌졸중으로 뇌가 손상된 환자 5명 중 1명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시야 장애를 겪는다. 운전은 물론 독서, 걷기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눈과 시신경은 멀쩡해도 뇌졸중으로 뇌 시각피질이 손상되면 시각정보의 일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야가 좌표 평면이라면, 시야 장애 환자는 사분면 일부가 까맣거나 희미하게 보인다. 시야 장애는 그동안 치료법이 없어, 그저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난치성 질환이었다. 강 교수는 의료 스타트업인 뉴냅스를 세워 환자의 시야 장애를 치료하는 디지털치료제 ‘비비드브레인’을 개발했다. 환자의 시야를 다시 넓혀주는 치료제다.

강 대표는 망가진 뇌도 반복 훈련을 하면 회복될 수 있다는 ‘뇌 가소성 이론’을 따라 비비드브레인을 개발했다. 비비드브레인은 가상현실(VR) 기기로 환자 맞춤형 시각 자극 훈련을 제공한다.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지난달 1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정식 처방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환자 40명이 비비드브레인을 쓰고 있다.

디지털치료제는 의사의 인지·행동 치료를 모바일 앱(app·응용프로그램) 같은 소프트웨어로 대체한다. 일반 헬스케어 앱과 달리 정식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출시할 수 있다. 전문 의약품처럼 의사 처방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

비비드브레인은 2019년 국산 디지털치료제 중 처음으로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인 확증임상을 승인받았다. 5년 뒤인 올해 4월 국산 디지털치료제로는 세 번째, 난치성 질환 치료제로는 처음으로 식약처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혁신의료기술로도 인정받았다. 디지털치료제의 성장 가능성도 보여줬다. 그간 디지털치료제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던 적응 질환의 한계를 깨고 같은 원리로 새로운 질환의 디지털치료제를 구현했다.

강 대표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석·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병원 신경과에서 환자를 봤다. 하버드 의대 방문교수와 미국 국립보건원(NIH) 박사후 연구원도 지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의 R&D(연구개발) 사업단장과 연구중심병원 육성사업의 총괄책임자를 맡고 있다.

정상인(왼쪽)과 뇌졸중 후유증인 시야장애를 겪는 환자(오른쪽)의 시야 비교 사진. 시야장애를 겪는 환자는 우측 하단의 아이들이 뛰어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강동화 대표

–뉴냅스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후유증으로 시야 장애를 겪는 뇌졸중 환자에게 ‘그냥 적응하고 사시라’는 말을 할 때마다 괴로워서 10년 전 연구를 시작했다. 뇌졸중 환자들의 손상된 시각겉질(피질)을 자극해서 회복시키려면 시지각 학습 훈련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국책과제로 소프트웨어 탐색임상을 했다. 시지각 학습의 효능을 검증하고, 치료 반응을 예측하는 바이오마커(생체지표)를 찾고 나니, 다른 업체에 기술 이전하는 것보다 직접 개발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2017년 뉴냅스를 창업했다.”

–창업부터 허가받기까지 7년이 걸렸다.

“우선 임상시험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 소수 인원으로 단기간에 하는 초기 임상시험 격의 탐색임상을 마치고, 2019년 국내 디지털치료제로는 처음으로 제품 허가를 위한 후기 임상인 확증임상에 진입했다. 처음엔 욕심이 과해 비교군을 완벽하게 설정하다 보니 비비드브레인과 눈에 띄는 효능 차이가 없어 한 차례 실패했다. 당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탓도 있다. 그 후 다시 진행한 확증임상으로 효과 입증에 성공했다.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은 환자가 비비드브레인을 12주간 치료받은 결과, 안 보이던 시야가 모두 회복되는 환자도 나왔다. 기능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을 통해 실제로 뇌 인근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도 확인했다.”

비비드브레인 치료 전과 치료 후 시야를 비교한 사진. 보이지 않는 검은 부분이 크게 줄었다./강동화 대표 제공

–실제 처방까지는 짧은 시간이 걸렸다. 비결이 뭔가.

“처음엔 ‘처방 코드 만들고, 환자 진료 정보 받고, VR 기기가 필요하니 의료장비 심의위원회를 거쳐서 장비를 구입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아산병원 소속이니 이 병원에서 처음 처방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유관 부서와 미팅을 했더니, 신경과 의사·간호사, 경영분석팀, 기획팀, 부서팀 등 총 7개 부서가 모이더라.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절차가 복잡하고 기간이 오래 걸리겠더라. 이 모든 프로세스를 간소화해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든 게 ‘이음(EEUM)’이다. 비비드브레인 처방을 원하는 병원이 있다면, 이 시스템도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뇌졸중 환자 중 시야 장애 환자는 몇 명이나 되나.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뇌 일부에 손상이 일어나는 게 뇌졸중인데, 이때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시각 피질이 손상되는 시야 장애 등이 대표적인 후유증이다. 데이터상으로는 1년에 새로 생기는 뇌졸중 신규 환자가 10만명 정도 된다. 그중 15~20%가 겪으니 2만명 정도라고 보면 된다.”

–비비드브레인의 치료 원리는 뭔가.

“현재 비비드브레인을 처방받은 40명은 20대부터 85세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이들이 모두 편리하게 치료 받으려면 게임 형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봤다. 1~10단계 난이도로 만들었다. 환자별로 시야가 보이지 않는 영역을 VR기기가 파악해, 해당 영역 주위에 십자 모형이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걸 반복한다. 환자들은 이 모형에 초점을 맞추는 임무를 받고, 잘 해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게 시각겉질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비비드브레인이 모든 시야 장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우리 시야를 평면 좌표 4분면으로 나눴을 때 좌측 또는 우측의 절반이 보이지 않는 반맹(半盲)인 환자는 비비드브레인을 사용할 수 없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아직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으니, 증상이 비교적 심한 반맹 환자는 확증임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우선 ‘리얼 월드(의료 현장)’에서 효과를 입증한 뒤에 추가 임상시험을 하는 옵션(선택사항)을 줬다. 반맹인 환자 분들은 ‘처방을 받을 수만 있다면 집도 팔겠다’고 하시는데, 마음이 많이 아프다. 꼭 추가 임상을 통해 이들까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적응증을 확대하고 싶다.”

–후속으로 개발 중인 디지털치료제가 있나.

“어린이의 사시로 인해 생기는 소아 입체시 장애 치료제 ‘뉴티(Nu.T)’의 확증임상을 진행 중이다. 사시가 있으면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서 물체가 두 개로 겹쳐 보이는데, 초점을 맞추려고 한쪽 눈으로만 보려고 하면 다른 한쪽 눈이 약시가 되기 쉽다. 비비드브레인과 비슷한 원리로, VR 기기를 통해 양쪽 눈에 시각 자극을 줘 입체시 훈련을 하면 분명 개선할 수 있다. 뉴티도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됐다. 또, 알츠하이머성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뉴냅스 사옥에서 강동화 뉴냅스 대표(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가 기자에게 비비드브레인 체험을 도와주고 있다./서울아산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