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강남구 파크약국에 '위고비 입고' 안내문이 붙어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는 지난 15일 국내에 출시 됐다./뉴스1

덴마크 제약사인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15일 국내 시장에 출시되자, 병·의원과 소비자들이 앞다퉈 주문 경쟁을 하고 있다.

위고비는 세계적으로 공급난을 겪고 있는 의약품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제약사와 유통사가 구매 수량을 제한해 품귀 현상과 이에 따른 혼란이 1년 넘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의료·의약계에 따르면 위고비 주문이 시작된 전날부터 병·의원과 약국에는 주문이 몰아쳤다. 이날 오전에는 위고비의 국내 유통을 담당하는 쥴릭파마코리아의 주문 사이트 서버가 한 차례 마비되기도 했다.

위고비는 일단 국내로 들어오면 1차 유통사인 쥴릭파마를 거쳐 2~3차 유통업체들이 물량을 확보하고 병의원과 약국으로 공급되는 구조다. 쥴릭파마는 출시 첫 주에는 초도 수입 물량으로 소량만 공급하고 있다. 한 의약품 유통업계 관계자는 “쥴릭파마가 사전 주문을 받아왔고, 그 물량이 약국에 오늘부터 전달되고 있다”며 “수도권은 오늘 약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위고비는 펜 모양의 주사로 1개당 주 1회, 1개월씩(4주) 투여할 수 있으며, 0.25㎎, 0.5㎎, 1㎎, 1.7㎎, 2.4㎎ 등 총 5개 용량으로 구성됐다. /뉴스1

이날 실제 제품을 받은 병·의원과 약국은 드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여의도의 한 가정의학과 의원은 “유통사가 9월 중순부터 주문을 받는다길래 넣어놨는데, 이틀은 더 걸린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사전에 예약한 환자들이 오늘부터 병원에 방문할 텐데 제품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병·의원마다 주문 가능한 물량이 다르다며 불만을 호소한 곳도 있었다.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 의원은 “어제 유통사에 주문 문의했더니, 20개만 가능하다고 하더라”며 “어제 처방을 문의한 환자만 100명이 넘는데 이들에게 처방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라고 말했다.

이들 병·의원에 따르면 노보 노디스크의 기존 비만 치료제인 삭센다를 비롯해 유통사와 거래 이력이 있으면 20개 이상까지 주문이 가능하다. 다만 신규 거래일 경우, 위고비를 용량당 2펜씩만 주문할 수 있다. 한 의약품 업체 관계자는 “국내 배정된 물량이 한정적이다 보니, 우선 약의 목적에 맞게 처방할 가능성이 높은 대형병원에 가장 많은 물량을 주고, 병의원 중에는 삭센다 처방 실적이 좋은 곳에 그다음으로 많은 물량을 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위고비는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공급 부족 약물 목록에도 위고비가 올라와 있다. 넘쳐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서다. 그만큼 국내에 공급되는 물량도 적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비만 환자 수가 적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체 인구에서 BMI가 30 이상인 성인 비만 환자 비율이 33.5%에 달한다. 국내는 약 5.4%에 불과하다.

게다가 국내 위고비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게 책정돼 제약사가 국내에 공급을 많이 배정하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위고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비급여 의약품으로, 국내 공급가는 37만2025원(4주분 기준)이다. 약 1300달러(약 170만원)에 달하는 미국보다는 저렴하지만, 의사 재량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진료비·유통비 등을 고려하면 소비자가 실제 부담하는 금액은 80만원을 웃돌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윤영미 대한약사회 정책홍보수석은 “국내 고도비만 환자는 외국에 비해 많지 않은 만큼, 국내 환자 수요와 약의 유통기한 등을 모두 고려해 배정을 했을 것”이라면서도 “해외의 높은 구매력에 국내 비만 환자들의 수요를 맞추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국노보노디스크 관계자는 “위고비의 물량 공급 타임라인은 유통과 마케팅을 맡고 있는 쥴릭파마코리아의 소관”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위고비의 경쟁 제품인 마운자로(일라이 릴리 제품) 또는 국내 비만 치료제가 출시되면 위고비 품귀 현상도 완화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위고비가 치료가 필요한 비만 환자가 아닌, 미용 목적 다이어트약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위고비는 고도비만환자 치료를 위해 개발된 전문의약품으로 의사 처방 없이는 사용할 수 없다.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인 성인 비만 환자 또는 BMI 27~30㎏/㎡ 미만이면서 고혈압을 비롯한 동반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처방해야 한다.

김경곤 대한비만학회 부회장(가천대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은 “의사는 원칙적으로는 치료제 목적에 맞게 처방해야 하지만, 처방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처방해주는 병·의원도 분명 있을 것”이라며 “높은 가격과 접근성에 지역별·소득별로 처방 불균형이 발생해, 꼭 필요한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날까 하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온라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위고비를 구매하는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한 달간 불법 판매·알선·광고 집중 단속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