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으로 병원을 나온 전공의들에게 한의원의 국소마취제 리도카인 불법시술을 고발하면 주당 40만원을 지급한다는 글이 메신저로 배포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오는 17일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올 예정인 만큼, 의사들이 수입이 없는 전공의 후배들을 동원해 한의사들을 압박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4일 의료계 제보에 따르면 최근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톡)에 사직 전공의와 휴학 의대생들에게 한의원들이 리도카인 불법시술로 의료법을 위반했다고 내용으로 당국에 민원을 넣으면 40만원의 주급을 지급한다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왔다. 해당 단톡에는 의사와 의대생 272명이 참여하고 있다.
해당 글의 작성자는 “사람들이 쉽게 민원을 넣을 수 있도록 민원 작성 가이드글을 작성하는 업무”라며 “기존에 작성하던 사직 전공의가 취업하게 돼 후임을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주 5일 하루 2개 가이드글 작성 시 일급 8만원, 주급 40만원 지급”을 약속했다.
단톡방 글의 작성자는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을 사용한 한의원’을 민원 대상으로 특정했다. 한 국내 프랜차이즈 한의원을 비롯한 몇몇 한의원의 상호명을 거론하며, 민원 글을 작성한 대가로 “40(만원)X6(주) 입금 완료”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의사들이 지적한 리도카인은 의료 시술 중 환자의 신경신호 전달을 차단해 통증을 없애는 국소마취제다. 지난해 의사단체인 전국의사총연합이 리도카인과 봉침액(벌독)을 혼합해 통증 부위에 주사한 한의사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해당 한의사는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한의사 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는 곧바로 항소해 지난달 항소심이 열렸다. 2심 선고는 오는 17일에 나올 예정이다. 한의사들은 “법원 판결을 앞두고 한의사들을 압박하는 여론을 만들고 있다”고 반발했다.
실제로 민원 모집 글이 올라오자 단톡방에는 한의사들에 대한 비방이 이어졌다. “의사 방 기웃거리지 말고 의대를 가라”, “바퀴벌레 만도 못한 존재”, “북조선이 어울린다” 등의 조롱과 폄훼 글이 달렸다.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는 단톡방에 올라온 글에 대해 “의협을 비롯한 의사단체가 연관된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도 “단체방에서 의사 개인이 사직 전공의들과 휴학 의대생을 후원하는 형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의원·한의사들에 대한 의사들의 조직적인 비방 행위는 이전부터 있었다. 최근 서울 개원을 앞둔 한 한의원이 레이저를 비롯한 의료기기를 사용한다고 홍보하자, 각종 의사 커뮤니티와 단톡방에 해당 한의원 주소를 공유하며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글이 잇따라 달렸다. 현재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을 비롯해 일부 전임 의협 회장들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해당 한의원을 언급하기도 했다.
경기도한의사회는 “한의사들은 약침시술(매선요법), 이산화탄소 레이저, 매화침레이저, 의료용레이저조사기(레이저침시술기) 등의 의료기기를 활용해 아무런 법적 제한 없이 피부 미용 시술을 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한의사의 의권 침해에 해당하는 이런 테러 행위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2019년 한의사의 레이저 사용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지난해 행정소송을 통해 사법부는 반도체 레이저수술기, 고주파자극기, 의료용 레이저조사기의 사용도 한방의료행위로 허용된다고 판단했다. 현재 건강보험도 레이저를 이용한 의료행위를 급여니 비급여로 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