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RNA 분자 그림./iStock Photo

빅터 앰브로스(Victor Ambros) 미국 매사추세츠대 의대 교수와 개리 러브컨(Gary Ruvkun)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가 마이크로리보핵산(microRNA)을 처음 발견한 공로로 7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이들이 노벨상을 받은 이유는 마이크로RNA 치료제 연구개발(R&D)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RNA 연구는 암과 심혈관, 신경질환 같은 인류가 정복하고자 하는 질병의 치료제 개발로 응용되고 있다. 특히 미국 제약사 앨라일람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첫 마이크로RNA 희소질환 치료제 ‘파티시란’을 비롯해 4종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면서 R&D에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 제약사 앨라일람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첫 마이크로RNA 희소질환 치료제 ‘파티시란’./앨라일람

◇암 치료제로 부상한 마이크로RNA

마이크로RNA는 20~24개의 염기로 이뤄진 작은 RNA다. 단백질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메신저RNA는 염기가 200~300개이다. 마이크로RNA는 단백질을 암호화하지 않고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세포의 성장과 발달, 분화 등 여러 중요한 생물학적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유전자 발현 이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암 치료제로 가장 유망한 마이크로RNA는 miR-34이다. 이 마이크로RNA는 종양을 억제하는 단백질 p53이 세포의 성장과 사멸, 유전자가 있는 데옥시리보핵산(DNA) 손상에 관여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 기업 미르나(Mirna) 테라퓨틱스는 miR-34를 모방한 후보물질 MRX34로 항암제를 만들고 있다. 이 치료제는 지난 2017년 임상 1상 시험을 마쳤다.

마이크로RNA 중 miR-15와 miR-16도 암을 억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마이크로RNA들이 없어지면 폐암과 유방암, 위암, 망막모세포종, 비인두암 등 많은 암의 원인이 된다. 이 마이크로RNA을 모방한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 2상 시험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또 미국 기업 인터RNA 테크놀로지스가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 시험을 진행 중인 INT-1B3도 있다. 이 치료제의 목표는 지질나노입자(LNP)에 마이크로RNA를 넣어 종양 억제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마이크로RNA는 암을 진단하고 치료 반응을 예측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프랑스 연구진은 폐암과 부인암, 갑상선암을 마이크로RNA로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임상시험 정보시스템 클리니컬트라이얼(Clinicaltrials)에 따르면 이집트에서는 방광암과 다발성 유방암을, 중국은 대장암 검진을 위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A) 1억개 염기쌍을 가진 예쁜꼬마선충은 다양한 세포 유형이 어떻게 발달하는지 이해하는 데 유용한 모델 생물이다. (B) 앰브로스와 러브컨은 lin-4와 lin-14 돌연변이를 연구했다. 앰브로스는 lin-4가 lin-14의 음성 조절인자로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C) 앰브로스는 lin-4 유전자가 단백질을 코딩하지 않는 작은 RNA, 즉 마이크로RNA를 코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러브컨은 lin-14 유전자를 복제했고, 두 과학자는 lin- 4 마이크로RNA 서열이 lin-14 mRNA의 상보적인 서열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심혈관·바이러스 분야에도 폭넓게 적용

마이크로RNA 관련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은 미국 미라젠(MiRagen) 테라퓨틱스다. 미라젠은 심혈관 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MRG-110′에 대한 임상 1상 시험을 지난 2019년 마쳤다. 또 피부 흉터의 일종인 켈로이드를 막기 위해 콜라겐과 단백질 형성을 억제하는 치료제 ‘MRG-201′은 2021년 임상 2상을 완료했다.

치료하지 않으면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 감염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마이크로RNA가 사용된다. 스위스 로슈의 자회사인 덴마크 생명공학기업 산타리스파마는 마이크로RNA 치료제 ‘미라비르센(Miravirsen)’을 개발하고 있다. 미라비르센은 C형 간염 바이러스(HCV) 유전자를 복제한 메신저RNA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HCV를 치료한다. 바이러스 DNA가 없어지지 않아도 중간 단계인 RNA가 없어지면 병을 완치할 수 있다.

신장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물질로도 개발 중이다. 레굴루스(Regulus) 테라퓨틱스는 2022년 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 질환을 치료하는 마이크로RNA 치료제 RGLS8429에 대한 임상 1상을 완료했다. 마이크로RNA miR-17를 표적으로 삼은 치료제가 나올 전망이다.

한양대학교 의약생명과학과 정동탁 교수(오른쪽 첫번째)와 학생들. 한양대학교 의약생명과학과 제공

◇국내 연구진도 심부전·루게릭 치료 연구

국내 RNA 신약개발 업체인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안티센스올리고뉴클레오티드(ASO)를 뇌로 주입해 알츠하이머 관련 마이크로RNA의 과발현을 막는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 이 약물은 치매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없앤다.

정동탁 한양대 의약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미국 뉴욕마운트시나이의대 심혈관센터와 함께 심부전 환자를 위한 마이크로RNA 치료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심부전 환자는 심근 소포체 막에서 소포체 내부로 칼슘을 이동하도록 돕는 서카2(SERCA2a) 단백질의 활성이 떨어져 있는데, 연구팀은 서카2의 전사 후 조절 단계에서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선택적 마이크로RNA를 발견했다.

김승현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 연구팀은 마이크로RNA를 활용해 혈액만으로 루게릭병 진행을 예측할 수 있는 진단법을 개발했다. 김 교수는 신경퇴행성 질환의 주요 병리 과정을 조절할 수 있는 마이크로RNA인 miR-214 억제제를 이용해 신경퇴행성 질환의 예방법과 치료법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