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노벨상 시즌이 오면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가 늘 한국인 최초 수상자 후보로 꼽혔다. 아쉽게도 김 교수 이름은 이번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특히 그의 연구 주제인 마이크로RNA 연구 분야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이 나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 컸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빅터 앰브로스(Victor Ambros) 미국 매사추세츠 의대 교수와 개리 러브컨(Gary Ruvkun) 하버드 의대 교수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마이크로RNA(리보핵산)의 원리를 밝힌 업적을 인정 받았다. 이들은 1980년대까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마이크로RNA를 1993년 발견하고, 이것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두 사람이 마이크로RNA의 존재와 기능을 밝혔다면, 김빛내리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마이크로RNA의 생성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큰 주목을 받았다. 마이크로RNA는 ‘드로셔’와 ‘다이서’라는 효소 단백질이 잇달아 기다란 RNA를 잘라내면서 만들어진다.
김 교수는 2015년 생명과학 분야 최고 학술지인 ‘셀’에 드로셔의 기능을 밝힌 논문을 발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우재성 서울대 교수와 함께 드로셔의 3차원 구조를 처음으로 규명해서 역시 셀에 발표했다. 지난해에는’네이처’에 다이서 단백질의 작동 원리를 밝혀냈다. 그는 이런 성과로 여성 과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을 받았으며 국내에서는 호암상, 아산의학상,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쉽쓸었다. 늘 한국인 노벨상 수상 1순위로 꼽았던 이유다.
김 교수는 7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두 사람은 마이크로RNA 초기 연구부터 이끌던 분들”이라며 “노벨상을 받을 만한 분들이 받았다”고 말했다.
마이크로RNA는 RNA의 한 종류로 길이가 20~24뉴클레오타이드 정도로 매우 짧다. 과거에는 아무 역할이 없는 쓸모없는 RNA 조각 정도로 치부됐지만, 앰브로스 교수와 러브컨 교수 연구를 통해 다른 RNA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의 몸에도 마이크로RNA가 1000가지쯤 있다. 김빛내리 교수는 “인간의 유전자는 대부분 마이크로RNA의 영향을 받는다”며 “마이크로RNA 하나가 서로 다른 단백질 유전자 수백 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RNA의 원리를 이용해 암을 비롯한 다양한 질환에 대한 RNA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김빛내리 교수는 “인위적으로 만든 짧은간섭RNA(siRNA)를 몸속으로 넣어 특정 유전자를 제어하는 원리”라며 “최근 간암, 고지혈증 등 여러 질환을 제어하는 치료제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2018년에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첫 마이크로RNA 희소질환 치료제가 승인받은 후 지금까지 다양한 치료제들이 개발됐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RNA 연구 분야는 이미 2006년에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며 “메커니즘 상으로는 유사한데, 중요한 분야이다 보니 올해에도 수상자가 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마이크로RNA 분야 유력한 노벨상 수상 후보로서 이번 수상자 선정이 아쉽다는 말에 “이번에 선정된 수상자들은 아주 초기에 마이크로RNA 존재와 역할을 밝혀낸 분들”이라며 “잘 아는 분들이 이번에 노벨상을 받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