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의대 교수들이 연구할 시간이 줄어들어 국내 의학 논문 게재 수가 25%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전문가들은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여력이 없다"며 "앞으로 의학 논문 수는 더욱 급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진은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으로 의료진이 지나가는 모습./연합뉴스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국내 의학 논문 게재 수가 25%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교수들이 논문을 쓸 시간마저 과도한 진료 업무에 쏟아부은 탓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여력이 없어 앞으로 의학 논문 수는 더욱 급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의학회는 “지난 1월 1일부터 이달 말까지 대한의학회지(JKMS)에 실리는 논문 수가 600편대로 지난해 동기간(813편) 대비 200편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24일 밝혔다. 또한 연말까지 게재될 예상 논문 수는 305편으로 지난해(408편) 대비 100편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25.2%가량 줄어든 셈이다.

대한의학회지는 동료심사를 거쳐 매주 영문으로 발행하는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EI)급 국제 학술지다. 국내 의학계의 대표적인 학술지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국내 의학자들이 가장 많이 논문을 내고 인용을 많이 한다.

유진홍 JKMS 편집장(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2022년까지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관련 연구 결과가 늘어나며 투고, 게재되는 논문 수가 급증했다”며 “코로나19 영향이 줄어든 2023년과 비교해도 올해 논문 수는 무척 줄어든 수치”라고 말했다.

국내 의학자가 연구 논문을 하나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년이다. JKMS에서 심사를 하는 데 평균 2.3주가 걸리고, 이후 게재되기까지 평균 16.9주가 걸린다. 의학논문을 한 편 게재하는 데 최소 1년 반이상 걸리는 셈이다.

하지만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의대 교수들이 연구하는 데 1년 반 이상을 투자할 여력이 없어졌다. 논문 게재 전 수정 과정에서 시간이 없어 연구를 멈춘 경우도 있었다. 유진홍 편집장은 “이것은 단순히 JKMS뿐 아니라 국내 모든 의학 저널들이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의정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는 만큼 앞으로 국내 의학 논문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지금까지 6개월간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유 편집장은 “의대 교수는 교육과 연구, 진료 등 세 가지를 모두 해내야 한다”며 “지금 대부분의 의대 교수들은 수 개월간 줄당직을 서느라 논문을 쓸 엄두도 못 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A교수는 “전공의들이 다 있었을 때는 학회 발표도 많이 하고 논문도 많이 썼다”며 “지금은 당직이 많기 때문에 혼자서 다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한동수 대한의학학술지 편집인협의회 회장(한양대구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 “의정 갈등이 심해지면서 의료의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의학 연구의 질도 당연히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의정 갈등을 겪으며 의대 교수들이 연구에 헌신할 동기를 많이 잃었다는 얘기다.

한 회장은 “이전까지 훌륭한 연구 결과를 냈던 교수들이 상당수 대학병원을 떠나 이직을 했다”며 “국내 의학계에서는 ‘보물’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