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가 12세 이하 소아 비만에도 효과가 있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현재 삭센다는 소아·청소년의 경우 12~17세에만 승인돼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와 벨기에 브뤼셀대학병원,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공동 연구진은 “6~12세 소아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삭센다를 맞으면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줄어드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지난 10일(현지 시각) 밝혔다. 연구 논문은 이날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실렸다.
삭센다는 같은 회사가 만든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미국 일라이 릴리가 만든 젭바운드(티르제파타이드)와 마찬가지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비만 치료제다. 이들 약물은 GLP-1을 모방해 혈당을 낮추고 식욕을 줄여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연구진은 평균 나이가 10세이고 BMI가 평균 31인 비만 어린이 82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이 중 56명은 매일 1회씩 삭센다 3㎎을 주사로 투여했다. 나머지 26명은 같은 양의 위약(가짝약)을 맞았다. 이들은 모두 임상시험 전까지 식습관이나 생활습관 교정만으로 체중 감량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투여한 지 56주차에 삭센다 투여군은 BMI가 최소 5.8% 줄어들었다. 그러나 위약 투여군은 오히려 BMI가 1.6% 증가했다. 삭센다를 맞은 어린이가 맞지 않은 어린이에 비해 BMI가 평균 7.4 줄어든 셈이다.
리라글루타이드는 이론상 어린이에게도 안전하다. 이번 임상시험 결과에서도 역시 삭센다가 경미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데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메스꺼움과 설사, 구토 같은 위장관 부작용이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라졌다.
참가 어린이들이 삭센다 투여를 멈추자 BMI가 다시 늘어났다. 하지만 12세 이상 소아·청소년이 삭센다 투여를 멈췄을 때 만큼 요요현상(체중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현상)이 심각하지는 않았다. 연구진은 이 약물을 어린 나이에 사용하면 더 강력하고 장기적인 체중 감량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아 비만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릴 때 비만이었던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살을 빼기가 더 어렵다. 또한 소아 비만은 성조숙증이나 제2형 당뇨병을 일으킬 위험도 크다.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체중 관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번 임상시험에 참여한 클라우디아 폭스(Claudia Fox) 미네소타대 의대 소아비만의학센터 교수는 이날 미국 CNN방송에 “나이가 어릴수록 삭센다의 체중 감량 효과가 크게 나타났고 요요현상도 적었다”며 “비만 치료를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에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만은 당뇨병과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에 참여하지 않은 사이먼 코크(Simon Cork) 영국 앵글리아러스킨대 박사는 “12세 이전 소아는 급격히 성장 중이므로 비만 치료제를 투여하기가 까다롭다”며 “비만약으로 인한 식욕 억제가 성장 발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소아를 대상으로 하는 추가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56/NEJMoa2407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