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 인공지능(AI) 개발업체들이 해외 기업과 연구진들의 ‘러브콜’을 잇따라 받고 있다. 의료 AI 기술이 의사의 진료 부담을 크게 덜어주고, 질병 진단의 정확성을 높여주는 도구로 주목받으면서 사업화에도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특히 내년 상반기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허가를 받을 AI 소프트웨어도 늘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가파른 성장세도 예상된다.
1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의료 AI 의료기기업체 루닛(328130)과 딥바이오는 스위스 제약사 로슈의 진단사업부인 로슈진단에 의료 AI 소프트웨어를 공급한다. 로슈진단은 병리 분야 의사들이 사용하는 ‘네이파이 디지털 병리’ 플랫폼을 운영하는데, 루닛과 딥바이오의 소프트웨어가 이 플랫폼에 통합되는 것이다.
루닛은 로슈진단에 병리 분석 AI 소프트웨어 ‘루닛 스코프 PD-L1′을 공급한다. 이 소프트웨어는 병리조직 슬라이드를 AI로 분석해 환자의 면역항암제 반응을 예측한다. 병리조직 슬라이드는 진료나 검사 과정에서 환자에게 떼어낸 조직을 현미경 관찰용 조직으로 바꾸기 위해 화학적 처리 과정을 거친 것을 말한다. 로슈진단은 루닛 스코프로 암 연구에 필요한 바이오마커(생체 지표)와 환자 정밀 의학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딥바이오는 전립선암을 분석하는 AI 소프트웨어 ‘딥디엑스 프로스테이트’를 제공한다. 딥디엑스 프로스테이트는 조직 검사로 얻은 고해상도 디지털 영상을 분석해 암 병변 부위를 정확히 식별한다. 암의 중증도와 종양 크기를 측정해 의료진의 치료 계획 수립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딥바이오는 이 AI 기술을 가지고 미국 암 정복 프로젝트 ‘캔서문샷’ 민관 협력체 캔서엑스의 컨퍼런스에 참가한다.
세계 최대 의료 시장인 미국의 유명 연구진에 의료 AI를 공급하는 국내 기업도 있다. 제이엘케이(322510)는 뇌졸중 진단 AI를 개발하고 있는데, 뇌졸중에 정통한 미국 교수와 업무협업 관련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제이엘케이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캘거리대, 노스웨스턴대, 서던캘리포니아대 연구진과 협업하고 각 대학병원을 거점으로 삼았다. 제이엘케이는 뇌졸중 진단 소프트웨어 3종에 대해 FDA 인허가를 신청했고, 연내 또 다른 3종의 인허가에 도전한다. FDA의 인허가를 받는 대로 각 거점병원에서 의료 AI로 수익을 낼 수 있다.
뷰노(338220)는 ‘뷰노메드 딥브레인’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딥브레인은 뇌 상태를 정량화해 의료진의 진단을 돕는 의료기기로, 지난해 10월 FDA 승인을 받고 현지 출시를 앞뒀다. 이외에 심정지를 예측하는 ‘뷰노메드 딥카스’와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과 엑스레이 판독 보조 기술도 연내 FDA 승인을 목표로 한다.
의료 AI 업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영업을 넓혀갈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의료 AI 시장 규모는 올해 기준 209억달러(약 27조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은 암과 뇌, 심장 질환 진료비가 비싸다. 대표적으로 뇌졸중의 경우 한국에선 2만원인 진료비가 미국은 140만원에 달한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 진출로 수익이 실현되면 본격적인 외형 확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 AI 기업을 발굴하고 있는 범부처전주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의 김태형 본부장은 “선진국들이 선점한 의료기기 분야에서 의료 AI는 한국이 세계 최초와 최고를 거머쥘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며 “사업단이 지원한 루닛이나 제이엘케이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 AI 기업 수와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앞으로 전망이 더 좋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