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을 일으키는 트레포네마 팔리듐균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NIAID

미국과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성(性) 매개 감염병인 매독 환자가 급증하면서 진단 기술 개발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지난 10일(현지 시각) 기존 방법으로는 초기 무증상 매독을 잡아내기 어려워 간편하면서도 빠르고 정확하게 매독을 검사하는 진단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우리나라 매독 환자가 급증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1~8월 국내에서 발생한 매독 환자는 1881명이다. 전년 동기 환자(416명)보다 4.5배 증가했다. 일본은 이미 2013년 매독 감염자 수가 1000명대를 넘어선 이래 계속 증가세를 보였다. 2017년 5000명을 넘어섰고, 2022년에는 1만3228명이 발생했다.

미국도 그 해 감염자가 20만7255명이었다. 최근 70년간 최악의 수준이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012년 이후 미국에서 매독에 감염된 채 태어난 아기도 10배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태아가 매독에 감염되면 생명을 잃거나 신경계에 큰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콘돔 대신 피임약 쓰면서 매독 급증

매독은 성 접촉을 매개로 트레포네마 팔리듐(Treponema pallidum)균에 감염되는 질환이다. 임신 중 모체에서 태아에게 전염되는 경우도 있다. 독균에 감염된 지 약 3개월 이내 초기(1기)에는 생식기나 항문 주위에 피부 궤양이 나타난다. 이때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2기 매독으로 진행한다. 손과 발 등에 전신 발진과 함께 근육통이 나타난다. 매독균은 잠복 상태로 남아 있다가 신경계와 눈, 심장, 뼈 등 여러 장기에 침범하는 3기로 나타날 수 있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데이트 앱(app, 응용프로그램)으로 불특정 다수와 만나기 쉬워지면서 매독 환자가 늘었다고 분석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접어들면서 유흥업소 이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루프와 피임약을 이용한 피임법이 주로 쓰이면서 콘돔 사용률이 줄어 매독 감염 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콘돔은 발진 부위를 덮어 성관계시 매독균이 전염되는 것을 막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접어들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라지면서 매독뿐 아니라 에이즈, 독감, 백일해,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 다른 감염병들도 많이 늘었다. 매독 환자 증가세가 두드러진 것은 진단과 치료 시기가 늦기 때문이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매독 같은 성매개 감염병은 아직도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숨기려는 경향이 있어 병원 방문을 꺼린다”며 “여성은 해부학적인 구조가 남성과 달라 매독 증상이 덜 나타나고 진단을 늦게 받아 병이 퍼지기 쉽다”고 말했다.

다행히 매독은 세계적인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퍼질 위험은 낮다. 박세윤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처럼 호흡기로 감염되는 감염병은 비교적 쉽게 전파가 일어난다”며 “매독은 일상적인 접촉으로 전염되지 않으므로 팬데믹을 일으킬 위험은 낮다”고 말했다.

피임약 사용이 늘면서 콘돔 사용률이 줄었다. 이에 따라 매독 감염이 증가했다./pixabay

◇매독균 단백질, 유전자 통한 진단법 개발 중

김우주 교수는 “매독은 일찍 진단 받으면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의심이 된다면 병원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치료보다 조기 진단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캐롤라인 캐머런 캐나다 빅토리아대 생화학·미생물학과 교수는 가디언지에 “매독 진단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고 말했다.매독 검사법은 1950년대 이후 크게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병원에서 쓰는 매독 검사법은 ‘비특이적 항체 검사(VDRL)’다. 혈액을 채취해 매독균에 대한 항체가 있는지 확인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매독균의 DNA를 검출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정밀 검사(DFA)를 한다. 박세윤 교수는 “최근에는 (검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매독이 의심되는 사람은 두 가지 검사를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매독균에 대한 항체가 생성되려면 매독균 감염 후 몇 주에서 몇 개월까지 걸린다는 점이다. 감염 초기에는 혈청 반응성 매독 검사로 매독을 판별하기 어렵다. 면역계가 덜 발달한 어린이를 검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매독 검사법을 향상시키기 위해 캐머런 교수에게 240만달러(32억원)를 지원했다. 캐머런 교수는 질량분석법을 이용해 매독균의 단백질을 직접 검출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병원균을 직접 찾는 방법이므로 잠복기에도 알 수 있다.

스티븐 살리판트 미국 워싱턴대 병리학과 교수는 압타머를 이용한 진단법을 연구하고 있다. 압타머는 항체와 유사하게 매독균의 유전자에 결합하는 유전물질이다. 살리판트 교수는 “압타머 진단법이 개발되면 빠르면 수분에서 늦어도 수십분 안에 매독 감염 유무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그만큼 환자를 치료하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진료 시간에 독감이나 코로나19 감염 유무를 확인하듯 매독도 간편하게 진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 방법을 이용하면 환자에게 감염된 매독균이 특정 항생제에 대한 내성 유전자를 가졌는지 알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만큼 해당 환자에게 적합한 항생제를 골라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