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응급실을 나서고 있다./뉴스1

전공의 부재로 전국 곳곳의 응급실이 진료를 중단하고 있는 가운데 제때 치료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 증상이 악화해 의식불명에 빠지는 경우도 생겼다. 현재 응급실 상황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는 정부와 달리 의료계는 앞으로 이런 상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2세 여아가 열과 경련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1시간가량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의식불명에 빠졌다. 당시 아이를 받아줄 병원을 찾기 위해 수도권 병원 11곳에 연락을 돌렸지만 대부분 병원이 소아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소아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세부 전문의가 없다며 아이를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60대 대장암 환자는 통증을 호소하며 통원 치료를 받던 강원대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이미 폐쇄된 터라 발걸음 돌렸다. 고혈압과 당뇨 등 지병을 앓던 50대 환자도 지난달 증상 악화로 응급실로 향했지만 이미 포화 상태로 치료가 지연됐고, 결국 일주일 뒤 사망했다. 지방에 사는 이 환자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약 처방을 받아왔는데, 외래 진료가 연기돼 처방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6월 10일까지 119 구급차가 진료 가능한 의료기관을 찾지 못해 환자를 4차례 이상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 경우는 17번이었다.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도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지난해 15번이었는데, 올해 상반기에 이를 앞질렀다.

현재 강원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건국대충주병원, 순천향대 천안병원 등이 야간이나 주말에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으며, 국립중앙의료원, 이대목동병원 등 서울 도심 의료기관도 응급실 야간·주말 운영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 비상진료 대응 브리핑에서 “전국의 응급실 409곳 가운데 99%가 24시간 운영 중”이라며 “일부 어려움은 있지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붕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당장 내일부터 응급실 운영이 일부 제한된 의료기관에 군의관 15명을 배치하고, 오는 9일부터는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 약 235명을 위험기관 중심으로 집중 배치할 예정이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에서 파견 근무 중인 이들 중 파견 기간이 끝나는 대로 응급실에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의료계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정부는 응급실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보다 그저 누구든 환자를 맞을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인 것 같다”며 “군의관 중 절반 이상이 응급의학과가 아니고, 이들이 투입된다고 해도 응급실에서 전문과로 연결하는 배후진료 능력이 떨어져서 모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응급실에는 각 과에서 와서 응급실 당직을 서는 전공의도 없다. 응급실에 방문하는 환자 중 경증 환자는 간단히 처치해서 돌려보내지만 중증 환자는 각 과 당직 전공의를 통해 전문과에 연계를 해야 입원시켜서 수술할 수 있다. 이 회장은 “당장 공보의와 군의관들을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내년에는 이들 인력을 신규로 뽑을 수 없기 때문에 내년 이후에는 결국 똑같이 대책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