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유행을 지나 이제 풍토병이 됐지만, 야생동물은 아직도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인간 근처에 살던 야생동물들이 광범위하게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 감염력이 강한 변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쥐, 토끼, 박쥐 등 6종서 바이러스 확인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칼라 핀킬스타인(Carla Finkielstein), 조셉 호이트(Joseph Hoyt) 교수 연구진은 “야생동물 23종을 조사한 결과 6종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징후를 보였다”고 3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 활동이 많은 지역 주변에 사는 동물에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버지니아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3종의 동물을 대상으로 항체검사를 했다. 그 결과 사슴쥐, 버지니아 주머니쥐, 너구리, 땅돼지, 동부솜꼬리토끼, 동부붉은박쥐 6종에서 바이러스의 흔적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버지니아주 전역에서 포획됐거나 야생동물 재활 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야생동물로부터 코와 구강에 면봉을 넣어 만든 시료 798개를 확보했다. 또 6종은 혈액 시료 126개도 채취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나온 6종은 인간 근처에서 사는 동물들이었다. 그중 5종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항체를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했더니 코로나19 대유행기에 인간에게 퍼진 변이 바이러스와 거의 일치했다. 연구진은 “하이킹 코스와 교통량이 많은 공공장소 근처의 동물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가장 많이 노출된 것으로 나타나 바이러스가 인간에서 야생동물로 전파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을 통해 야생동물로 퍼진 것이다.
이전에 과학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야생동물에 퍼지면 새로운 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핀켈스타인 교수는 “바이러스는 히치하이커처럼 인간에서 새롭고 더 적합한 숙주인 동물로 갈아탄다”며 “바이러스는 더 많이 퍼져 생존하기 위해 새로운 숙주인 동물에 적응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진은 주머니쥐 한 마리에서 당시 인간에게 유행하는 것과 일치하는 변이 바이러스와 함께 이전에 보고되지 않은 다른 변이 바이러스도 확인했다. 연구진은 “야생동물에서 생긴 돌연변이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할 수 있어 나중에 백신 개발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야생동물들이 다시 인간에 코로나를 퍼뜨렸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가축, 반려동물서 야생동물로 전파 확인
코로나 대유행 동안 사람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들이 잇따라 나왔다. 2020년 덴마크의 농장에서 키우는 밍크가 사람을 통해 코로나에 걸린 뒤 다시 사람에게 코로나를 옮겼다. 덴마크 정부는 사육 중인 밍크 1700만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 초에는 홍콩 반려동물 판매점에서 팔린 햄스터가 코로나에 감염됐으며, 직원과 손님에게도 바이러스를 옮겼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홍콩 당국도 햄스터 2000여 마리를 모두 살처분했다.
사람과 같이 사는 개와 고양이는 물론이고 동물원의 사자, 호랑이, 고릴라도 코로나에 걸렸다. 그 수는 수백 종으로 늘 수 있다. 2021년 미국 캐리 생태계연구소의 바버라 한(Barbara Han) 박사 연구진은 인공지능으로 코로나바이러스와 결합하는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인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큰 동물 540종을 가려냈다. 연구진은 그중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인 박쥐와 함께 나무두더지·나무늘보·개미핥기·천산갑이 가장 감염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버지니아 공대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바이러스가 야생동물 사이에 퍼지면서 진화하면 나중에 백신이 듣지 않는 돌연변이를 낳을 수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수레시 쿠치푸디(Suresh V. Kuchipudi) 교수는 2022년 1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아이오와주의 흰꼬리사슴이 최근 80% 이상 코로나에 감염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바이러스가 다시 인간으로 넘어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캐나다 트렌트대의 제프 보먼(Jeff Bowman) 교수 연구진은 2022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에 “2021년 말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흰꼬리사슴 298마리를 검사한 결과 17마리에게서 돌연변이 코로나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슴에 있는 바이러스는 당시 인간 사회에 퍼진 것과는 달랐다. 그보다 2년 전 미국 미시간주의 농장에 있는 밍크와 사람에게서 발견된 바이러스와 흡사했다. 연구진은 근처 코로나 확진자 중 한 명이 사슴의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종류에 감염된 것을 확인했다. 감염 시간이나 위치로 볼 때 사슴에서 사람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옮아간 것이라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버지니아 공대 연구진은 이번에 조사 대상 종의 수를 확대해 야생동물이 바이러스에 광범위하게 노출돼 있으며, 인간 활동이 많은 지역이 종간 바이러스 전파의 접촉점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유지하는 저수지 역할을 하는 야생동물이 생각보다 훨씬 많고, 인간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호이트 교수는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흰꼬리사슴에 초점을 맞췄지 뒷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동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며 “코로나 양성 반응을 보인 많은 종이 북미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넓은 지역에 대한 감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버지니아 공대 연구진은 쓰레기통과 버려진 음식물이 동물에게 바이러스를 옮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4-49891-w
Nature Microbiology(2022), DOI: https://doi.org/10.1038/s41564-022-01268-9
PNAS(2022), DOI: https://doi.org/10.1073/pnas.2121644119
Proceedings of Royal Society B(2021), DOI: https://doi.org/10.1098/rspb.2021.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