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을 예방하는 단백질 재조합 백신 '싱그릭스'/GSK

대상포진 백신 ‘싱그릭스(Shingrix)’가 치매 발생을 기존 백신보다 6개월 정도 더 늦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앞서 기존 대상포진 백신 ‘조스타박스’도 치매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에 싱그릭스가 치매 예방 효과가 더 큰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미 안전성을 입증한 대상포진 백신이 향후 치매 예방 백신으로 재탄생할지 주목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개발한 유전자 재조합 백신인 싱그릭스가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치매 발병을 기존 생백신에 비해 접종 후 6년 동안 치매 진단 없이 살 수 있는 기간이 17% 더 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25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발표했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헤르페스 조스터 바이러스)가 몸속에 잠복 상태로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다시 활동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피부에 발진과 물집이 생기면서 심한 통증과 감각이상을 유발한다.

2010년 중반까지 대상포진을 예방하기 위해 미국 머크(MSD)가 2006년 출시한 조스타박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조스터 같은 생백신이 주로 쓰였다.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화시킨 상태로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백신이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조스타박스 접종이 치매 위험을 8.5% 낮춘다고 발표했다.

이번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65세 이상 미국인 20만 7674명을 대상으로 의료 기록을 분석해 조스타박스와 싱그릭스를 맞았을 때 치매 발생 위험을 비교했다. 절반은 2017년 이전에 조스타박스를 맞았고, 나머지 절반은 2017년 11월 이후 싱그릭스를 맞았다. 이전에 치매 같은 신경퇴행성질환 진단을 받은 사람은 제외했다. 그리고 4~6년 간 이들이 언제 처음으로 치매 진단을 받았는지 추적 관찰했다.

분석 결과 싱그릭스를 맞은 사람이 치매에 걸릴 위험은 조스타박스를 맞은 사람보다 약 17% 낮았다. 날짜로 따지면 164일가량 늦게 진단을 받은 셈이다. 치매를 늦추는 효과는 남성(13%)보다 여성(22%)에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대상포진이 아닌 다른 백신만 맞은 사람과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싱그릭스를 맞은 사람은 독감, 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 백신을 맞은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23~27% 낮게 나타났다. 막심 타케 옥스퍼드대 의대 연구원은 “이번 연구 결과는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발생 위험을 크게 낮추는데, 특히 싱그릭스 효과가 뛰어나다는 뜻”이라며 “임상시험에서 검증된다면 노인, 의료 서비스, 공중보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싱그릭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치매 발생을 늦추는지 밝히지 못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가 재발하면서 대상포진을 일으킬 때 치매 발생 위험도 높아지는데 백신이 이를 억제한다고 추정했다. 또는 백신 접종 자체가 신체의 전반적인 면역력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싱그릭스는 기존 백신과 달리 유전자 재조합 방식이다. 바이러스 전체를 주입하지 않고 인체 면역세포가 반응할 바이러스의 일부 단백질(항원)만 주입한다. 이 단백질은 바이러스 유전자를 넣은 햄스터 난소 세포를 배양해 만든다. 그만큼 효과가 뛰어나고 안전하다. 생백신은 약독화해도 바이러스 자체를 쓰는 방식이라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사람은 접종하기 힘든 단점이 있었다.

앤드류 도이그 영국 멘체스터대 생화학과 교수는 “최근 알츠하이머병 진행 속도를 늦추는 신약과 효과면에서 비교할 만하다”며 “단백질 재조합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추는 간단하고 저렴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진은 싱그릭스를 맞은 환자와 위약을 맞은 환자를 비교해 그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어느 연령대에 몇 번 빈도로 맞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할 예정이다. 이번 연구는 백신 접종자만 비교해 정확한 임상시험이 되지 못한다.

현재 대상포진 시장은 치매 예방 효과와 무관하게 싱그릭스 주도로 바뀌었다. 싱그릭스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기존 백신은 시장에서 밀려났다. 국내도 올 10월부터 조스타박스 공급이 중단된다.

참고 자료

Nature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4-03201-5

med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5.23.2329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