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면 약이 된다. 아픈 사람이 치료제라고 생각하고 가짜약(위약)을 먹으면 진짜 약을 먹은 것처럼 통증이 사라질 때가 있다. 일명 ‘플라시보(placebo) 효과’다. 미국 과학자들이 뇌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일어나는 경로를 찾았다. 같은 원리로 만성 통증을 줄이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와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연구진은 생쥐 실험을 통해 위약을 먹었을 때 뇌 특정 부위가 활성화하며 플라시보 효과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연구진은 쥐가 바닥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뜨거운 방에 있다가 바닥이 미지근한 방으로 가도록 했다. 쥐는 뜨거운 바닥을 밟으면 통증을 느끼고, 이후 시원한 바닥을 밟으면 통증이 줄어들었다. 여름날 해변에서 뜨거운 모래를 피해 물 가까이로 가는 것과 같다.
쥐는 곧 뜨거운 방에서 다른 방으로 가면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나중에는 뜨거운 방에 있던 쥐가 자리를 옮겨도 같이 뜨거운 방을 만나도록 했다. 그래도 쥐가 통증을 느낀 발을 핥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연구진은 쥐가 플라시보 효과를 얻어 통증을 덜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때 쥐의 대뇌 피질에서 소뇌로 연결되는 부위(다리뇌핵)가 활성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이 경로는 지금까지 통증과 관련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적이 없었다. 운동에 관여한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었다.
연구진이 뇌에서 이 경로가 작동하지 못하게 억제한 쥐를 다시 뜨거운 방에서 뜨거운 방으로 가게 했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 빠르게 일어나 발을 핥거나 뛰었다. 연구진은 플라시보 효과가 나지 않아 통증을 더 많이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진이 다리뇌핵에 있는 신경세포 4932개를 분석한 결과, 이 중 약 65%가 강력한 진통제를 먹었을 때 활성화하는 것과 동일한 오피오이드 수용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이들 수용체가 활성화하며 마치 진통제를 먹은 것처럼 통증이 완화된다고 분석했다.
그레고리 셰러(Grégory Scherrer)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결국 부작용이나 중독 없이도 통증을 치료하는 새로운 약물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진은 위약 없이도 이 경로가 활성화하는 방법을 추가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 방법을 찾으면 진통제를 먹었을 때도 실제 약 효과에 플라시보 효과가 더해서 통증 완화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연구진은 또 왜 사람마다 플라시보 효과를 느끼는 정도가 다르고, 이 효과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왜 사라지는지도 연구할 계획이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816-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