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억제제인 라파마이신을 매주 소량 투여하면 여성의 폐경을 5년 이상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난소가 노화하는 속도가 늦춰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성 노화도 느려진다. 라파마이신이 이미 장기 이식에 쓰는 저렴한 약물이기 때문에 효과가 입증되면 새로운 항노화 약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미국 컬럼비아대 제브 윌리엄스 교수 연구진이 35세 이하 여성 3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초기 임상시험에서 라파마이신의 난소 노화 억제 효과를 확인했다”고 22일(현지 시각) 전했다.
라파마이신은 1990년대부터 장기이식 환자에게 사용되고 있는 면역 거부 억제제다. 세포 성장과 증식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 2000년대 항노화 효과가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여럿 나오면서 항노화 신약 후보물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35세 이하 여성 34명을 대상으로 라파마이신이 여성의 생식력이 멈추는 폐경을 늦출 수 있는지 알아보는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라파마이신을 매주 5㎎씩 3개월 동안 투여받았다. 보통 장기이식 환자들이 면역억제제로 투여하는 양인 13㎎보다 절반 이하로 적은 수치다. 연구진은 라파마이신을 너무 많이 투여하면 오히려 월경 주기가 달라지거나 배란이 멈춰 난임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상시험 결과 여성이 매달 소모하는 난자의 개수가 줄어들었다. 여성은 한 달에 한 번 50개 정도 배란한다. 그중 정자와 수정하는 난자 1개 외에 나머지는 버려진다. 하지만 라파마이신을 소량 투여한 참가자들은 수정되지 않고 소모되는 난자가 15개로 줄었다. 연구진은 이로 인해 배란을 하는 난소의 노화를 20% 감소시킨다고 추정했다. 생식에 쓰이지 못하고 버려지는 난자의 양을 줄여 그만큼 오랫동안 배란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파마이신을 투여한 여성들은 월경 주기도 유지됐고 별다른 부작용도 없었다. 연구진은 여성이 30대부터 라파마이신을 투여하면 난소뿐 아니라 전체 노화 과정을 늦출 수 있다고 밝혔다. 난소 노화가 여성 노화의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폐경기가 되면 면역력과 뼈 밀도가 떨어지고 신진대사 만성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이번 연구의 목표는 난자 냉동 보관 대신 여성의 생식력 자체를 보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난자를 과도하게 채취해 냉동 상태로 보관하는 난자 동결과 달리, 라파마이신을 복용하면 여성이 몸속에 젊고 건강한 난자를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함께 이끈 서유신 컬럼비아대 유전학·발달학과 교수는 “고령으로 임신을 걱정할 만한 사람들에게도 이전에는 없었던 희망을 주는 연구 결과”라며 “라파마이신을 이용해 난소 수명을 연장하고 폐경을 늦추면 여성의 건강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임상시험의 최종 결과는 2년 뒤에 나온다. 연구진은 향후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난소의 노화를 늦추는 만큼 난자의 질이 떨어져 유전적 이상이 있을 위험이 있는지도 추가 연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