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거리 일대의 한 일반의원. 피부 미용 관련 입간판이 줄지어 서있다. /허지윤 기자

○○톡스필. ○○스킨, ○○페이스, 예쁜○○ 의원. ○○퓨어, ○○봄날 의원, 샤인○○의원.

서울 청담동, 목동, 홍대 등 번화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피부·미용 시술 전문 네트워크 병원의 상호다. 미장원이나 네일샵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호지만 ‘의원’이라고 붙어 있다.

이들 병원들의 상호가 튀는 외래어 일색인 것은 의료법 때문이다. 병원의 간판광고는 옥외광고물법과 의료법에 따라 제작해야 한다. 의료법에서 해당 진료 과목의 전문의가 있으면 ‘OO과의원’이라고 쓸 수 있다. 전문의가 없는 병원은 그 대신 ‘○○의원’ 또는 ‘○○클리닉’이라고 쓰고 ‘진료과목 ○○과’라고 작게 적을 수 있다.

과거 ‘의원’ 간판을 걸면 사정이 어려운 의사처럼 비춰졌다. 전문과목 간판이 없다는 것은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지 않아 ‘전문의’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피부·미용 시술 병원 네트워크가 커지면서 수도권 대학 병원의 교수들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내고 미용 시술 의원을 개업했다는 소리까지 심심찮게 들린다.

미용 시술 병원 시대를 연 것은 일반의들이다. 그러다보니 서울 빅5 대학병원 흉부외과 펠로우(전문의)가 쉬는 날 일반의인 미용 시술 원장에게 레이저 쏘는 기술을 전수받고 있더라는 목격담도 공유된다. 자신의 전공에 따라서 미용 시술도 구분해 한다는 우스개도 나온다. 외과와 비뇨기과 전문의들은 보툴리눔 톡신 같은 주사 시술을 하고, 내과와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은 레이저를 전문으로 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보툴리눔 톡신은 일정 기간 근육을 마비시켜 주름을 생기지 않게 해 주지만 자칫 잘못 주입했다가는 표정이 생기지 않아 환자 항의를 받을 수 있다. 레이저는 잘못 조사하면 화상을 입힐 수 있다. 물론 대부분 의사들의 반응은 “보툴리눔 톡신이나 레이저는 큰 기술이 필요 없으니, 의대 졸업해서 국시만 통과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의사들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피부과 전문의 출신 원장이 네트워크 병원을 차리면 시술은 일반의들이 해서 건물을 세웠다더’라는 ‘카더라’도 난무하다. 미용 시술을 내건 의원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의사의 출신 성분을 내세우는 곳은 많지 않다.

피부 미용 시술 병원들은 오히려 최신 기계를 홍보한다. 레이저 시술은 새롭고 좋은 기계가 나오기 때문에 오래된 기계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 출신의 개원의는 “8시간 수술에서 받는 수가와 레이저 시술 10분으로 받는 금액이 차이가 없다”며 “미용 시술 개원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