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유전성 난청을 치료할 수 있다는 동물 실험 결과가 나왔다. 유전자 가위는 변이 유전자를 잘라내고 정상 유전자로 바꾸는 기술이다. 연구가 발전하면 청각 장애를 앓는 환자에게 희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첸 정이(Zheng-Yi Chen) 미국 하버드 의대 이비인후과 교수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 기술로 청각을 잃은 쥐의 증상을 개선했다고 11알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상염색체 우성 난청’을 가진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상염색체 우성 유전은 질환을 가진 부모에서 온 돌연변이 유전자가 자녀에게 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성 난청은 ‘마이크로리보핵산 96(MIR96)’이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발생한다. MIR96은 귀 안쪽의 감각 세포에서 발현되고, 달팽이관 발달과 청력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MIR96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서서히 청력을 잃어간다.
연구팀은 유전성 난청을 치료하기 위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로 청각 세포의 유전물질인 DNA에서 MIR96 돌연변이 유전자를 잘라내는 실험을 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가이드 RNA와 캐스9 효소 단백질로 구성된다. 가이드 RNA가 잘라야 하는 부분을 붙잡아 두면 캐스9 단백질이 DNA와 결합하면서 자른다.
실험은 생후 3주와 6주, 16주 자란 청각 장애 쥐의 한쪽 귀에만 유전자 가위 치료제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달팽이관과 뇌간 사이 반응을 살피는 ‘청성뇌간반응’과 달팽이관에서 만들어지는 소리 에너지를 측정하는 ‘이음향 방사’ 검사로 청각 기능을 평가했다.
실험 결과, 유전자 가위 치료제가 주입된 쥐들의 청각이 확실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전자 가위 치료제는 쥐가 어릴 수록 효과가 좋았다. 구체적으로 3주 성장한 쥐는 치료제 주입 후 19~27.5㏈(데시벨) 더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는 청각이 최대 562배 좋아진 것이다. 6주 성장한 쥐는 유전자 가위 치료로 17~20㏈ 낮은 소리를 들어 청각 기능이 최대 117배 올랐다. 향상된 청각 기능은 20주가 지나도 유지됐다. 다만 16주 성장한 쥐에서는 유의미한 청각 기능 개선이 나타나지 않았다.
치료 효과에 차이를 보인 건 쥐의 나이에 따라 캐스9 단백질 발현량이 달랐기 때문이다. 변이 유전자를 잘라내는 캐스9 단백질은 4주 뒤부터 쥐들의 청각 세포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 3주 성장한 쥐가 6주 성장한 쥐보다 캐스9 단백질 양이 더 많았다. 연구팀은 청각 장애가 심해지기 전에 유전자 치료제를 주입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치료 후 염증 반응과 같은 부작용도 적었다. 부작용이 적었던 건 유전자 치료제를 옮기는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 벡터의 용량을 최적화했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AAV는 인체에 해가 없는 바이러스로, 유전자 전달 도구로 널리 활용된다. 다만 AAV는 용량이 너무 적으면 약물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많으면 면역 시스템이 반응해 염증이 일어날 수 있어 적정량을 찾아야 한다. 연구팀은 세포 하나당 AAV 벡터가 102~103개가 들어가도록 용량을 조절했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진행성 난청은 선천성 청력 장애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유전성 난청을 늦추거나 치료하는 약물과 치료법은 아직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월 청력 장애인이 4억3000만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5% 이상을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잘못된 청취 습관이 생활화되면서 청력 장애를 앓는 사람은 2050년 25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에게 유전자 가위 치료를 적용하기 위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유전적 돌연변이에 의해 유발된 청력 손실을 치료하기 위한 생체 내 유전체 교정의 실현 가능성을 확립했다”며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AAV 용량을 찾고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추가적인 연구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translmed.adn0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