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 백신을 비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조류의 급성 전염병이다. 한국은 사람을 대상으로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는데, 최근 다른 포유류 동물에 이어 사람도 감염된 사례가 나오면서 유사시 접종을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지영미 질병관리청 청장은 20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인플루엔자 대유행 대비·대응계획’ 심포지엄에서 기자와 만나 이 같은 계획을 밝히며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을 비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 청장은 “백신을 비축하게 된다면 연간 7만 5000 도스(dose·1회 접종분)를 비축하게 될 것”이라며 “비축을 위해선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질병청에 따르면 7만5000 도스는 정부가 백신 생산업체에 주문할 수 있는 최소 규모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발생했을 때 보건·방역 대응 인력들에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다.
정부가 백신 비축에 나서는 것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전 세계가 백신 부족으로 혼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사망률은 25~5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질병청은 백신을 비축할 경우 GC녹십자와 백신 생산 계약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GC녹십자가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 생산 기술을 갖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사람 간 감염 사례가 없고, 발병한 조류는 폐사 처리해왔기 때문에 백신 생산·접종 사례가 없다. 인플루엔자는 종(種)마다 독감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종류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종간(種間) 장벽을 넘어 포유류까지 번졌다. 미국에서는 젖소 감염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다.
포유류 감염 사례가 늘어나면 포유류끼리 전염되는 형태로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인간도 위험해질 수 있다. 최근 호주에서 사람 발병 사례와 사망 사고도 나왔다. 로버트 레드필드 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지난 14일(현지시각)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한 팬데믹 가능성과 관련해 “언제 일어날 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 발표를 맡은 손영래 감염병위기관리국장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다음 팬데믹은 인플루엔자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이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사람·동물·환경의 건강을 균형 있게 조정하고 최적화하자는 ‘원헬스’전략을 주로 논의했다. 김혜권 충북대 미생물학과 교수는 “원헬스 기반 연구·대응에 집중할 조직을 구성·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감염병 대유행이 확산할 때 신속한 백신 개발을 위해 국산 백신 플랫폼을 달걀이나 동물세포에서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기존 방식부터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전달하는 mRNA(전령 리보헥산) 백신 등으로 다변화할 계획이다. 또 팬데믹 초기 6개월 동안 대응할 수 있는 의료품·물자·인력 등의 자원 인프라를 확충할 방침이다.
김은진 질병청 신종병원체분석과장은 “신종 인플루엔자의 조기 인지를 위해 임상 감시를 강화하고 유전체 분석에 기반한 포괄적 진단법을 개발·개선·보급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