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최 휴진 관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집단 휴진에 들어간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집단 휴진은 무기한이 아니라 일주일”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집단 휴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수위를 조절한 것이다. 서울대 의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환자들이 서울대병원에 오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는 당초 무기한 휴진을 내세웠지만 여론은 물론 의료계 내부에서도 반발이 거세자 “오는 22일까지 일주일 동안 진료를 조정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의료 체계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수위를 낮췄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에서 가진 집회에서 “이번 주 외래·수술 일정이 조정됐지만, 서울대병원은 열려있다”면서 “정부는 어제 전국 단위 순환 당직제를 발표했지만, 서울대병원으로 오실 환자분들께는 이런 당직제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집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더는 ‘무기한’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이번 주만 휴진하고, 다음 주부터는 현재 휴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비대위의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휴진을 중단할 것인지 묻자 “언제까지나 휴진할 수는 없지 않나”라면서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해야지 않겠나”고 답했다.

그는 “비대위가 생각했던 휴진은 정기 환자와 정규 수술 중에서 미룰 수 있는 건 미루자는 것이었다”며 “연락을 받지 못하셨거나 약이 필요한 분들 모두 오셔서 진료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 “환자들한테 일방적으로 문자를 통보해서 외래 진료를 미뤘다. 환자들이 그 문자를 받고 얼마나 놀랐을까 싶다”며 “사실 부끄럽지만 그때의 타격을 별로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생각이 짧았다”고도 했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는 지난 15일 소속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 교수들의 휴진 참여 여부를 조사한 결과 교수 전체 교수 967명 중 529명, 54.7%가 17∼22일간 외래를 휴진·축소하고, 정규 수술·시술·검사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이에 따라 수술장 예상 가동률은 기존의 62.7%에서 33.5%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가 이날부터 무기한 휴진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대한의사협회도 오는 18일부터 휴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세브란스병원의 연세대 의대 비대위도 27일부터 무기한 휴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무기한 휴진 선언에 각종 환자 단체와 여론뿐 아니라 의료계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분만 병·의원협회와 아동병원협회는 휴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홍승봉 뇌전증지원병원협의체 위원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16일 기고를 통해 “10년 후 1,500명가량의 의사가 사회에 더 나와 의사 수가 1% 늘어난다고 누가 죽거나 한국 의료가 망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면서 “나의 사직, 휴직으로 환자가 죽는다면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정당화될 수 있을까”라고 밝혔다.

반면 방재승 비대위 투쟁위원장은 전면 휴진을 일주일로 바꾸는 데 대해 “위원장 개인 의견이며, 서울대 전면 휴진은 무기한”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끝까지 안 들어주면 휴진을 철회하고 항복 선언을 해야겠지만, 이후 의료 붕괴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며 “(교수들의 요구에 대해) 정부가 가시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휴진을 철회하고 대화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비대위도 나중에 별도 입장문을 내고 “일주일 간만 휴진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며, 비대위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이번 주 변경된 진료·시술·수술 일정에는 변동사항이 없으며, 다음 주 일정은 아직 변경되지 않았다”며 “향후 참여율과 진료 예약 변경 내용에 대해서는 진행되는 대로 보도자료를 통해 공지하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 집회에는 곽재건 소아흉부외과 교수가 자신이 맡았던 환자들에게 편지의 형식을 빌려 “‘내가 이런 욕을 먹어가면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다 때려치우자 싶다’가도 어려운 과정을 넘어온 소아 심장병 환자들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미소가 생긴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두고는 “21세기에 공산당인가. 본인이 하기 싫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직장을 그만 두겠다는데 왜 벌을 주나”라고 말했다.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왜곡되지 않은, 기울어지지 않은 의료 현장에서 일하며 국민에게 더 나은 의료 혜택을 드리는 것인데 열악한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떠난 의사들의 행동이 개인적 일탈로만 취급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호 서울대 의대 학생회장은 “정원이 확대되면 교육의 질은 저하된다”며 “당국은 유급을 늦출 수 있다고 하는데, 1년 동안 교육하기 벅찬 양을 단숨에 밀어 넣는 것이 정부가 생각하는 의학 교육의 선진화인가”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집회 시작과 끝 순서에 “탁상공론 밀실 회의 투명하게 공개하라”, “현장 의견 무시하는 불통 정책 철회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제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