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서울대 의대 교수(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안과)는 매년 5월 스승의 날이면 점자로 쓴 편지를 받는다. 그동안 치료한 아이들이 보내는 감사 편지다. 올해 받은 편지는 “초등부 5학년 ㅇㅇㅇ입니다. 스승의 날 축하합니다. 20살 때 눈 수술 부탁드립니다. 저 꼭 보이게 해주세요. 힘내시라고 초콜릿 선물합니다”고 적혀 있었다.

김 교수는 희소 난치성 안질환인 선천성 망막질환(IRD)에 걸린 영유아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이다. 외래 환자만 8000명을 보고 있는 김 교수는 매년 800명씩 신규 환자를 받고 있다. IRD는 치료가 쉽지 않다. 조기 검진해서 일찍 레이저 치료를 해도 시력을 지키는 확률은 1%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김 교수는 IRD가 결코 불치병이 아니라고 말한다. 유전자 치료제를 만들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정훈 서울대의 의과학과 교수 겸 서울대병원 교수는 매년 스승의 날에 선천성 망막질환으로 시력을 잃은 아이들에게 점자로 쓴 편지를 받는다. 아이들은 김 교수에게 치료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나중에라도 꼭 앞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사진은 김 교수가 얼마 전 받은 한 아이의 점자 편지./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

김 교수는 “IRD의 하나인 망막층간분리는 유전자 돌연변이 22개가 원인인데, 바꿔서 말하면 유전자 치료제 22개만 만들면 실명하는 환자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망막층간분리를 첫 번째 유전자 치료제 개발 대상 질환으로 꼽았다. 다른 IRD에 비해 급격하게 진행되지 않고 환자들도 꽤 오랜 시간 시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망막층간분리 환자의 가족이 적극적으로 가족력을 확인해 준 덕분에 돌연변이가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정확하게 확인했다.

김 교수는 연구 끝에 망막층간분리를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했다. 생쥐와 영장류 실험에서 충분한 교정 효율도 확인했다. 하지만 인체 대상 임상시험은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17일 세종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교수는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하면 국내 환자들은 치료제를 늦게 받을 수밖에 없어서 어떡하든 국내에서 하고 싶었다”며 “하지만 해외에서 먼저 임상시험에 착수한 곳도 있어 더는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정훈 서울대 의대 교수는 선천성 망막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원천 기술을 확보했지만, 국내에서는 임상시험이 쉽지 않아 영국에서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이종현 기자

유전자 치료는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는 효소 복합체인 유전자 가위로 한다. 유전자 가위는 인체에 해가 없는 바이러스에 끼워넣어 환자에게 투여한다. 임상시험을 위해 환자에게 쓸 바이러스 전달체를 개발하는 비용이 3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정부도 최근 첨단 재생의료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새로운 지원 제도도 만들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국가신약개발재단이 새로운 신약 개발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지만, 지금 제도로는 어느 단계에서도 바이러스 전달체 개발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도 수십억원의 연구비를 한 번에 지원할 수 없다.

김 교수는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희소질환사업부가 같이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강의를 하지 않고 해외에서 연구만 하는 안식년을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가서 임상시험을 하는 방법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나라에서 연구하라고 준 돈으로 치료제의 원천 기술을 개발한 것이지만, 이대로 기술이 사장되는 건 아까워 외국 아이들이라도 혜택을 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직 망설이는 건 자신이 치료한 한국 아이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편지를 보낸 초등학생 환자가 스무 살에 받을 눈 수술을 기다린다고 했는데, 사실 국내 임상시험만 하면 기다릴 필요도 없어요. 어른들이 이런 아이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