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때 땅콩을 자주 먹으면 청소년기에도 땅콩알레르기가 생길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땅콩알레르기에 대한 내성이 십수년이 지난 뒤까지도 유지되는 덕분이다./픽사베이

영유아기에 땅콩을 자주 먹으면 청소년기에도 땅콩알레르기가 생길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땅콩알레르기에 대한 내성이 십수년 동안 유지된 덕분이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28일(현지 시각) “5세 이전 어린이가 땅콩을 정기적으로 먹으면 한동안 땅콩을 굳이 챙겨 먹지 않아도 청소년기에 땅콩알레르기가 생길 위험이 71%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 에비던스’에 실렸다.

◇알레르기 유발 항체는 줄고, 억제 항체 증가

땅콩알레르기는 땅콩이나 땅콩이 든 제품을 먹었을 때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이 일어나는 질환이다. 면역계가 땅콩에 든 일부 단백질을 외부 침입자(항원)로 인식하는 탓이다. 대개 피부가 가렵거나 두드러기가 나고 설사를 한다. 심각한 사람은 호흡 곤란이나 어지럼증, 저혈압, 아나필락시스(전신 면역반응)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연구진은 5세 이하 640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쪽만 땅콩 제품을 정기적으로 먹게 했다. 나머지는 땅콩 제품을 피하도록 했다. 만 5세가 됐을 때 땅콩을 정기적으로 먹은 어린이들은 땅콩알레르기에 시달릴 위험이 81% 적었다. 이후 연구진은 1년 간 참가자 모두에게 땅콩을 먹지 않도록 했다. 그전에 땅콩을 정기적으로 먹었던 어린이들은 6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땅콩알레르기 위험이 낮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중 497명이 만 13세가 됐을 때 다시 조사했다. 그 사이 144개월 동안 땅콩을 정기적으로 먹지 않았어도 땅콩 20개 정도(5g)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5세 이전에 땅콩을 먹지 않았던 어린이는 246명 중 38명(15.4%)에서 땅콩알레르기가 나타났다. 반면 5세 이전에 땅콩을 먹었던 어린이는 251명 중 11명(4.4%)만 알레르기가 나타났다. 영유아때 땅콩을 챙겨 먹었던 것이 한참 뒤에도 땅콩알레르기 발생 위험을 71.5% 줄인 셈이다. 연구진은 땅콩알레르기에 대한 내성이 12년 뒤 청소년기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땅콩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이뮤노글로불린E(IgE)라는 항체가 특히 많다. 땅콩을 먹으면 이 항체가 땅콩 단백질을 항원으로 인식해 과도한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위험하지 않는 단백질을 공격해 알레르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이와 반대 작용을 하는 항체(IgG4)가 많아지게 하는 면역치료제를 처방한다.

이 같은 특징은 이번 연구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혈액 검사 결과 영유아기에 땅콩을 먹었던 어린이들은 땅콩 단백질에 대한 IgE 수치가 먹지 않았던 어린이들보다 절반 가량 낮았다. 반면 땅콩알레르기를 막는 항체인 IgG4 수치는 땅콩을 먹었던 어린이들이 땅콩을 먹지 않았던 어린이들보다 2.56배나 더 높게 나타났다.

이번 연구를 지원한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의 진 머레이조(Jeanne Marrazzo) 소장은 “어릴 때 땅콩을 자주 먹이는 간단한 전략만으로도 수만명의 어린이가 땅콩알레르기로 고통 받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알레르기 생기기 전에 내성 확보해야

땅콩알레르기 환자는 미국, 유럽 등 서구에 특히 많다. 유전적인 영향도 있지만, 땅콩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권혁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에서는 땅콩을 고온에서 볶거나 튀겨 먹는다”며 “이 과정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만한 단백질이 변질돼 알레르기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생땅콩을 먹거나 땅콩을 중온에서 조리해 잼으로 만들어 먹는다”며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단백질이 그대로 남아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과거 학계는 땅콩을 비롯한 식품 알레르기를 줄이기 위해 어린 아이에게 특정 식품들을 일부러 먹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오히려 식품 알레르기가 증가했다. 최근에는 어릴 때 먹으면 오히려 알레르기가 예방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나오고 있다.

권혁수 교수는 일단 식품 알레르기가 생기고 난 뒤에는 그 식품을 피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특정 식품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도록 내성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 교수는 “임신부가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 태아에게 식품 알레르기에 대한 내성이 전해진다”며 “생후에는 엄마의 모유를 통해, 또는 이유식을 통해 일찍부터 다양한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EJM Evidence(2024), DOI: https://doi.org/10.1056/EVIDoa23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