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으로 취급됐던 알츠하이머병이 치료가능한 병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 제약사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신약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미국, 일본에 이어 지난 24일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부터 허가를 받았다.
국내 기업도 알츠하이머병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뇌과학교실 윤승용 교수가 세운 아델이다. 윤 교수는 “아델이 개발 중인 ADEL-Y01은 해외에서 개발한 신약과 다른 경로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한다”며 “기존 치료제는 기대만큼 효과가 없었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전 세계 치매 환자 5500만 명 중 3분의 2를 차지하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뇌에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알츠하이머 치매가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서 신경세포 기능을 떨어뜨린다. 타우 단백질은 신경세포의 기다란 형태를 유지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데, 역시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문제를 일으킨다. 이음새가 떨어져 나가니 신경세포의 형태가 붕괴되고, 뭉친 타우 덩어리가 신경세포를 떠돌아다니며 세포를 손상시킨다.
이번에 국내에서 허가 받은 레켐비나 미국 일라이 릴리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하는 도나네맙 성분 신약은 모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뭉치지 않도록 막는 방식으로 치매를 늦추는 약이다. 이와 달리 아델의 ADEL-Y01은 타우 단백질을 공략한다. 윤 교수는 “지금까지 타우 단백질을 공략하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로 허가받은 약은 없었다”며 “우리 신약 후보물질이 아밀로이드 베타를 공략하는 신약보다 치료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타우 단백질과 결합하는 물질을 발견하고 지난 2016년 사내 벤처 아델을 세웠다. 동물실험에서 기억력 회복 가능성을 확인한 아델은 미국에서 인체 대상 안전성을 알아보는 임상 1상 시험을 하고 있다. 아델은 오는 2026년까지 임상 1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유한양행(000100)의 폐암 신약 렉라자를 개발한 오스코텍(039200)이 아델과 공동개발하고 있다. 아델은 임상시험 중인 ADEL-Y01 외에 다른 방식으로 알츠하이머 치매를 공략하는 신약 후보물질 ADEL-Y03, ADEL-Y04도 개발 중이다.
–타우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은 이유는.
“타우 단백질을 제거하는 것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치료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레켐비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지만, 치료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레켐비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 인지 장애나 경증 알츠하이머병 환자 치료제다. 중등도 이상으로 진행된 알츠하이머병 환자에 대한 효과와 안전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ADEL-Y01은 어떻게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나.
“ADEL-Y01을 투여하면 면역세포인 대식세포(미세아교세포)가 변형된 타우 단백질을 없앤다. 대식세포는 뇌 속 이물질을 먹어 치우는 청소부이다. ADEL-Y01은 변형된 타우에 달라붙어 청소 대상임을 알려준다.”
–변형된 타우 단백질을 구별하는 방법은.
“타우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인 라이신-280에 주목했다. 이 아미노산에 문제가 생기면 타우가 변형되고 엉켜서 떨어져 나가 덩어리가 된다. ADEL-Y01은 아세틸기란 유기분자에 의해 변형된 라이신-280 아미노산을 표적으로 한다.”
–타우 단백질을 공략하는 치료제를 기존 신약과 비교하면.
“타우 단백질이 변형되고 비정상적으로 쌓이는 것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보다 알츠하이머병의 발병과 악화 경로와 더 일치한다. 타우에 문제가 되면 병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타우 단백질을 공략하면 치료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기대한다.”
–다른 알츠하이머병 신약 후보물질도 있다고 들었다.
“ADEL-Y01을 포함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 3개를 개발하고 있다. ADEL-Y03은 베타2-마이크로글로불린(베타투엠)이라는 단백질을 표적으로 한다. 늙은 쥐와 젊은 쥐의 혈관을 연결했더니 젊은 쥐의 인지 능력이 떨어졌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그 이유가 베타투엠 단백질 때문이라는 연구가 최근 나왔다. 베타투엠은 평상시에는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주조직 적합성 복합체(MHC)-1에 붙어있다가 떨어져 나와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렇게 떨어져 나온 베타투엠과 결합해 없애는 식이다.”
–신약마다 공략 대상이 다르다는 말인가.
“그렇다. 또 다른 알츠하이머병 신약 후보물질인 ADEL-Y04는 ApoE4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았다. APOE 유전자는 체내의 지방 대사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여기에 돌연변이가 생긴 APOE4 유전자는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크게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APOE4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POE4 유전자가 만드는 ApoE4 단백질은 지질과 콜레스테롤을 운반한다. ADEL-Y04는 ApoE4에 결합해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한다. 이 밖에 타우 덩어리를 제거하는 저분자화합물, 아세틸화된 타우를 측정해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는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국내 알츠하이머병 치료나 신약 개발 수준은 어떤가.
“국내 대학병원에서 알츠하이머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수준은 세계 최고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도 한국 대학병원과 협업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진단 치료 기술의 원천은 해외에서 비롯됐다. 한국이 글로벌 수준의 원천기술과 특허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임상시험에 직접 쓰려는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기업과 정부가 전략적으로 지원과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작은 사업들이 분산된 형태라 각자도생하기에 바쁘다.”
–벤처 기업 혼자 힘으로 신약 연구개발(R&D)을 하기는 벅차지 않나.
“정부가 많이 도왔다. 처음엔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의 전신인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타우 표적 항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동물실험을 마치고 본격적인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이 발족했다. 치매극복사업단으로 갈아탔는데, 사업단 예산이 크게 줄었다. 우리 외에도 국가 연구개발(R&D) 자금 지원이 필요한 연구들이 많다. 정부가 치매극복사업단의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해 주면 좋겠다. 그것이 어렵다면 신약개발사업단에서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중복 지원 금지 규정을 좀 더 유연하게 해소해 주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환자 치료하는 임상 의사가 아니라 기초의학 교수가 된 계기는.
“사춘기 때부터 뇌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뇌를 연구할 수 있는 의대에 진학했다. 뇌를 공부하는 신경영상과·정신건강과·신경과·신경외과를 기웃거렸지만,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 의사가 되면 뇌 신경을 연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의가 되려면 전공의를 거쳐 군의관·펠로우까지 10년 넘는 시간 수련을 받아야 한다. 결국 더 많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험난한 신약 개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