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가 자기 정신건강을 과도하게 염려하는 일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다루는 TV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새끼'의 한 장면./채널A 스크린샷

최근 TV 프로그램과 자기 계발 도서, 유튜브 등에서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대한 콘텐츠가 부쩍 늘었다. 10대가 이런 정보 홍수에 휩쓸려 정신 건강 염려가 과도해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신의 정신 건강을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여기거나 병적 상태로 낙인 찍어 오히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진단 받고 해결하려면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 건강 캠페인이 부정적 영향 줄 수도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지난 6일 ‘우리는 정신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이야기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고 보도했다.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는 청소년들에게 정신 건강 교육을 강화했다. 청소년이 혼자 고통을 받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예방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정신 건강 인식 캠페인이 지나치면 청소년이 자신의 증상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실제보다 더 문제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10대가 일시적으로 우울한 감정을 심각한 질환으로 느끼는 경우가 성인보다 많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4월 국제 학술지 ‘뉴 아이디어스 인 사이콜로지’에 냈다. 연구진은 이 현상을 ‘유병률 인플레이션’이라고 불렀다. 정신 건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병에 걸리지 않은 아이들도 자신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보를 주고 10대가 알아서 판단하는 방식 대신, 전문가와 직접 상담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청소년이 자신의 증상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지레 포기해 오히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리브룩캠퍼스와 노스웨스턴대 파인버그 의대 연구진은 ”스스로 우울증이 있다고 판단하는 청소년은 또래보다 자존감이 낮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17~25세 14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지난달 15일 국제 학술지 ‘정서장애 저널’에 냈다.

조사 대상 중 우울증 진단 기준에 드는 사람은 555명(39.0%)였다. 하지만 ‘자신이 우울증인 것 같다’거나 ‘우울하다’고 답한 사람은 316명(22.2%)이었다. 나머지는 우울증 진단 기준에 들더라도 본인을 ‘우울하다’거나 ‘우울증 환자’라고 부정적으로 느끼지 않았다는 얘기다.

비교 결과 스스로 ‘우울하다’, ‘우울증 환자’라고 낙인을 찍은 청소년은 다른 청소년보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본인의 행동을 우울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조건 우울증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들은 감정이 변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한다”며 “우울증을 생물학적으로 필연적 현상으로 보고 치료하려고 노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국내 정신과는 문턱 높아... 2주 이상 문제면 전문의 찾아야

국내 전문가들도 10대가 성인보다 정신 건강을 더 심각하게 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터넷에 정신 건강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많고, 정신과 문턱도 높아 청소년들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외국과 마찬가지로 국내 10대, 20대도 성인보다 자기 상태에 대해서 예민한 경향이 있다”며 “본인은 치료를 받아야 하고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대유행을 지나며 전 세계적으로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신체 건강만큼 정신 건강을 챙기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보는 많아졌는데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배승민 교수는 “사람들은 주로 TV나 인터넷 블로그, 유튜브를 통해 정신 건강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며 “특히 10대는 이런 정보를 여과 없이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유튜브는 한 가지 편향된 정보를 보면 알고리즘이 계속해서 비슷한 것을 추천해줘 마치 이 정보가 사실인 것처럼 믿게 한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단편적인 사례만 보고 ‘내가 저 정도는 아니니 병이 아니다’거나 ‘나도 저런 면이 있으니 저 병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스스로 판단한다”며 “자신을 지나치게 병자 취급하거나 실제 병이 있는데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병을 적절히 치료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환자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의사의 진단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홍현주 교수도 “인터넷에 흔히 돌아다니는 우울증 또는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자가진단테스트가 오히려 위험하다”며 “약물 치료하면 대부분 좋아지는데 스스로 병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본인이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학교생활이나 친구 관계, 가정 생활이 이전과는 다른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정신과 문턱이 높은 것도 문제를 악화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홍현주 교수는 “한국은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에도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아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친다”라고 말했다. 그는 “강남에 소아정신과가 많은데 환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다른 지역보다 정신 건강을 돌볼 기회가 더 많다는 의미”라며 “다른 지역에서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조차 하지 못해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가려해도 병원이 적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2024) DOI: https://doi.org/10.1016/j.jad.2024.01.229

New Ideas in Psychology(2023) DOI: https://doi.org/10.1016/j.newideapsych.2023.10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