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수의대의 토니 골드버그(Tony Goldberg) 교수는 2017년 7월 아프리카 우간다의 부동고(Budongo) 산림 보호구역에 설치해둔 비디오카메라를 점검했다. 동영상에 나오는 침팬지들은 나무 아래 모여 있었다. 나무 열매라도 먹나 해서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침팬지가 입으로 가져간 것은 나무 둥치 안에 쌓인 마른 박쥐 배설물이었다. 전염병학자인 골드버그 교수는 지난 22일 사이언스지 인터뷰에서 “부동고에서 60년 동안 연구했지만 침팬지가 박쥐 배설물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연에서는 동물이 배설물을 먹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다. 어미 새는 새끼가 배설하면 바로 집어삼킨다. 사람이 키우는 반려동물도 종종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먹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침팬지가 먹은 게 박쥐 배설물이라면 문제가 다르다고 본다. 박쥐가 바이러스의 온상(溫床)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침팬지가 박쥐 똥을 계속 먹다간 또 다른 코로나를 부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과연 골드버그 교수가 목격한 침팬지가 새로운 전염병의 시발점이었을까.
◇침팬지가 먹은 똥은 바이러스 덩어리
골드버그 교수는 지난 22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 바이올로지’에 부동고 숲의 침팬지들이 박쥐 똥을 자주 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부동고 숲에서 노악 둥근잎 박쥐 서식지 앞에서 찍힌 동물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침팬지들은 71일 동안 최소 92번 마른 박쥐 배설물을 먹었다. 야생 영장류가 박쥐 배설물을 먹는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침팬지 외에 콜로부스원숭이도 이 기간에 박쥐 배설물을 65번 먹었으며, 나탈다이커 영양은 무려 682번 박쥐 배설물을 먹었다. 사람 한 명도 박쥐 배설물 근처에서 카메라에 찍혔는데, 비료에 쓰려고 배설물을 모은 농부로 추정됐다. 골드버그 교수는 침팬지가 박쥐 배설물을 먹으면 다양한 바이러스에 노출된다고 봤다.
박쥐는 많은 바이러스 전염병의 시발점이다. 박쥐 몸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을 유발한 코로나바이러스를 포함해 바이러스 137종(種)이 있는데 그중 67종은 인간에 감염된다. 치명적인 출혈열인 에볼라를 비롯해 광견병, 니파병, 마르부르크병이 박쥐 바이러스에서 시작됐다.
코로나 19도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가 중간 숙주를 거쳐 인간에 오면서 유발됐다고 추정된다. 코로나 19전에도 박쥐의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각각 사향고양이와 낙타를 거쳐 사람에게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유발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표면에 왕관(코로나) 모양의 돌기가 나 있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지금까지 모두 7종이 발견됐는데, 코로나 19와 사스, 메르스를 부른 3종 외에 4종은 가벼운 감기를 유발한다.
우려한 대로 부동고의 침팬지가 먹은 박쥐 배설물에서 바이러스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골드버그 교수 연구진은 침팬지가 먹은 박쥐 배설물에서 유전물질인 RNA와 DNA를 추출해 유전정보를 해독했다. 연구진은 박쥐 배설물에서 ‘부히루구 바이러스(Buhirugu virus) 1′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를 포함해 신종 바이러스 27종을 발견했다.
◇담배 농사 때문에 먹이 부족해진 탓
골드버그 교수는 침팬지가 박쥐 배설물을 먹는 것은 인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동고 숲에 사는 침팬지와 다른 야생동물들은 라피아야자(학명 Raphia farinifera) 나무의 줄기 심을 즐겨 먹는다. 나트륨이나 칼륨, 마그네슘, 인과 같은 필수 식이 미네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근 담배 농가도 라피아야자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농민들은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끈으로 담뱃잎을 묶어 말렸다. 2006~2012년 국제 담배 수요가 급증하자 끈 수요도 크게 늘어 라피아야자가 거의 멸종될 지경이 됐다. 야자나무가 사라지자 부동고 숲의 야생동물은 박쥐 배설물에서 미네랄을 얻었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이런 가설은 앞서 연구에서도 제시됐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세인트 앤드루스대 연구진은 부동고 숲의 침팬지가 야자나무 대신 진흙을 먹는 모습을 학술지에 발표했다. 지난 2015년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침팬지들은 손으로 진흙을 떠서 먹었는데, 그 속에는 칼슘과 철분, 마그네슘, 칼륨과 같은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있었다. 진흙을 먹으면 배탈도 막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부동고 지역 여성들은 배탈이 나거나 임신을 하면 숲에서 가져온 점토를 물과 섞어 먹는다고 알려졌다.
박쥐 배설물에서 나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 흐홉기세포 표면에 있는 수용체 단백질 4개와 결합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스콘신-매디슨대 연구진은 아직 침팬지가 먹은 박쥐 배설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독일 헬름홀츠 원헬스 연구소의 파비안 레엔데르츠(Fabian Leendertz.) 박사는 “이번 연구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중요한 경로를 밝혀냈다”며 “침팬지의 배설물을 분석해 박쥐 바이러스가 감염될 수 있을 만큼 오래 유지되는지 확인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침팬지가 박쥐 배설물을 먹고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확인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후변화도 종간 바이러스 전염 증폭시켜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의 진화생물학자인 파스칼 가뉴(Pascal Gagneux)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부동고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인간이 자원을 과도하게 착취하면 생태계에 지진과 같은 충격(ecoquake)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만약 침팬지를 통해 새로운 바이러스 전염병이 퍼진다면 원인은 인간인 셈이다. 과학자들은 코로나 19나 에볼라 역시 인간이 숲을 없애고 농경지를 만들거나 밀렵과 야생동물 요리를 통해 박쥐 바이러스를 가진 야생동물과 인간이 예전에 없던 접촉을 하면서 유발됐다고 본다.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 역시 바이러스 전염병을 유발할 수 있다. 2022년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진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동물의 서식지가 바뀌면서 새로운 종간(種間) 바이러스 전염을 촉발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조지타운대 연구진은 당시 네이처에 컴퓨터 시뮬레이션(모의실험) 결과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50년간 동물 간 바이러스 전염이 1만5000건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종간 바이러스 전염은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아래 세네갈에서 니제르, 수단에 이르는 사헬 지대와 인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동물들이 기온이 적당한 곳을 찾아 이동하면서 종간 접촉과 전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미에 살던 박쥐들은 온난화로 인해 북쪽 미국 동남부로 서식지를 옮겼다. 인간이 야생동물을 막다른 곳으로 내몰면 결국 전염병이라는 부메랑이 돼서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는 말이다.
참고 자료
Communications Biology(2024). https://doi.org/10.1038/s42003-024-06139-z
Nature(2022),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2-04788-w
PLoS One(2015),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134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