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치매는 나이가 들면서 생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성 치매는 전체 발병 건수의 1%에 머물고, 고지혈증과 당뇨, 고혈압 등 다른 질환이 주된 발병 이유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등 환경 요인도 치매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성인 질환은 젊은 시절부터 자기 관리를 하면 통제할 수 있고 중·장년층이 되면 뇌졸중과 수면, 사회적 교류의 영향력이 커진다.
핀란드가 주도하는 국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인 세계 핑거 프로그램은 여기에서 착안했다. 치매 예방을 위한 5가지 활동으로 유산소 운동, 독서, 등 푸른 생선과 신선한 채소·견과류, 사회적 교류, 기타 위험인자 등을 관리하고 경과를 관찰하는 방식이다. 10년 넘게 핑거 프로그램의 생활을 실천한 수 만명을 관찰한 결과 알츠하이머 발병 확률이 확실히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얼마 전 나왔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묵인희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장은 “세계 핑거 프로그램과 유사한 한국 실정에 맞는 핑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묵 단장은 “치매 발병을 5년 늦춰서 전체 치매 환자의 증가폭을 5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치매 극복은 치매 발병을 늦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묵 단장은 한국의 치매 극복 연구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 석학이다. 서울대 동물학과 졸업한 묵 단장은 미국 애리조나대에서 신경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연구해 왔다. 치매극복단장과 서울대 치매융합연구센터센터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2020년부터 사업단을 이끌고 있다.
묵 단장은 “치매 진단에 있어서 한국의 이미지 처리 기술과 정보통신(IT)을 이용한 분석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치료 분야에서도 아이디어의 다양성이나 선도적 시도는 세계 수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치매 극복’을 목표로 세웠다. 이건 어떤 개념인가.
“치매 극복은 치매 발병을 늦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80세에 치매가 발병할 것을 5년 늦추면 타인의 도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기간이 5년 늘어나게 되니 사회적으로 이득이다. 이를 위해서 치매를 조기 진단해서 관리해야 한다. 초기 선별 진단을 통해 40~50세 때 치매 조기진단을 받고 예방·관리부터 치료까지 가능해야 한다. 치매와 관련된 대부분의 예산은 ‘치매 환자 돌봄’에 쓰인다.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ㅡ사업단이 출범한 지 4년이 지났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지난 2022년 3년마다 보건산업진흥원에서 실시하는 사업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았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치매 치료제와 진단기기 개발이라는 목표가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신약·치료제의 경우 임상시험 승인이 매우 어려운데, 7건이 이미 승인받았다.
임상 1상이 4건, 2상이 3건이고 국내가 4건, 해외가 3건이다. 사업 기간 9년을 통틀어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성과가 1단계 첫 3년에 이미 나온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치매치료제 2종과는 전혀 다른 치료 원리의 치료제들이다.”
ㅡ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린다. 어떤 원리의 치료제들인가?
“지금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과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다. 이 약들은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항체 치료제다. 미국에서 임상 1상을 진행 중인 한 신약 후보물질은 타우를 타깃으로 한다. T세포를 활용한 세포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염색체의 끝에 있는 염기서열 ‘텔로미어’가 짧아지면 노화가 진행된다. 이 텔로미어를 길게 만드는 텔로머레이스 효소에 대한 연구도 있다.”
“불필요한 세포 구성 성분을 스스로 파괴하는 오토파지(자가포식) 리셉터를 이용해 뇌 안의 독성 찌꺼기를 제거하는 치료제도 있다. 동아ST에서는 먹는 치매치료제인 ‘도네페질(상품명 아리셉트)’을 붙이는 형태로 개발 중이고, 뇌혈관 장벽을 통과하기 위해 초음파로 뇌를 열어서 약물을 투입하는 ‘집속형 초음파 자극 시스템’도 국내 임상 2상 중이다. 이 시스템은 치매뿐 아니라 다른 뇌 질환까지 적응증을 넓힐 것으로 기대된다.”
ㅡ뇌 질환 치료까지 영역을 넓힌다는 건가.
“사업단은 치매 관련 혁신 기술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더 나아가 뇌 질환으로 확장하려는 구상이 있다. 지난 2017년 사업단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때만 하더라도 ‘선진국들도 성과가 나오지 않는 분야에 우리가 할 수 있겠나’라는 패배 의식도 있었다. 배정된 예산도 2000억원 정도였다. 그런데 연구과제 공모를 시작하니 공모 때마다 경쟁률이 10:1을 넘어섰다. 이제 확실히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ㅡ치매 진단 기술 개발에도 성과가 있었나
“사업단에서 참여하는 뉴로핏이란 회사에서는 양전자단층촬영(PET)을 분석해서 치매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이용해서 치매를 예측하는 아쿠아라는 프로그램은 일본에서 이미 판매되고 있다. 아이메디슨에서도 경도 인지장애 환자들, 치매 초기 환자들의 뇌파나 행동들을 분석해 선별 진단하는 검사시스템을 개발했다.
진단 카트리지 분야에서는 바이오소닉스가 빠른 시간 안에 적은 혈액량으로 베타아밀로이드 유무나 알츠하이머 발병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진단 기기를 만들어 미국 소비자가전쇼(CES) 2023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이같은 기기들은 알츠하이머를 100% 정확하게 진단할 순 없지만 사전 스크리닝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점이 나오면 병원을 가면 된다. 즉, 지금의 당뇨나 임신 진단 키트처럼 집에서 치매를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다.”
ㅡ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 시장·자본 규모의 한계로 ‘뒷심이 딸린다’는 것이다. 치매의 경우 원인이 워낙 다양하고 인지기능을 측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임상시험에서 표본 수가 1000~1500명 수준에 머문다. 그보다는 훨씬 많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3상 끝까지 끌고 가서 치매 신약을 파려면 조 단위의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임상시험을 진행·감당할 만큼 관련 분야 투자가 많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치매 치료제를 힘들게 개발하고 임상 2상까지 진행한 후에는 다국적 회사에 매각하고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베스트 인 클래스’ ‘퍼스트 인 클래스’에 대한 보다 과감한 투자와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