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의 순천향대천안병원은 1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지난달 12일 호흡기내과 병동을 폐쇄하고, 간호사 등 직원들에게 연차 휴가 소진을 요청한 지 보름여만이다. 이 병원은 지난달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병원의 수술 횟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여기에 의대 교수들이 일방적인 의대 증원 정책을 펴는 정부에 항의해 ‘주 52시간 근무’를 내세우며 외래 진료 축소에 들어가면서 병동 추가 폐쇄와 직원 무급휴가를 검토 중이다. 전공의들이 언제 돌아올 지 알 수 없다 보니 수술 재개도 기약이 없다.
사실 순천향대천안병원 사례는 이 병원만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달 직원들 대상으로 한 달 무급휴가를 지시한 데 이어, 얼마 전 기간을 100일로 늘렸다. 경기도의 한 사립대병원 주차장은 텅 비다시피 한다. 박형국 순천향대 천안병원장은 병원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비상경영체제 전환 설명회에서 “당장 다음달 직원 월급을 걱정할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사립대병원 병원장들은 지난달 29일 대한사립대학병원협회 간담회를 열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이같은 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지방사립대병원을 위한 저금리대출이라도 알아봐 달라”라고 요청했다. 윤을식 회장은 “사립대병원들의 힘든 사정을 정부에 전달했다”라며 “저금리대출도 제안으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복지부가 전공의 이탈로 어려움을 겪는 사립대병원 고충을 청취하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당초 차의과대학, 가천대 길병원, 경희의료원, 고려대의료원, 아주대병원 등 8곳이 참석하기로 했는데, 계명대동산병원, 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 동아대병원, 인하대병원, 의정부성모병원 등 전국 45개 사립대 관계자들이 비대면으로 참석했다.
병원들의 절박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참석자가 많았고, 회의도 길어졌다.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한 회의는 11시 30분쯤 끝날 예정이었으나, 조규홍 장관이 자리를 이석한 후에도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한 병원장은 복지부에 “(국립대의대만 지원할 게 아니라) 성역없이 지원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공의 집단이탈에 이어 의대 교수들까지 진료를 축소하면서 상급종합병원들은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병원 하루 매출이 작년과 비교해 10억원 이상 줄어드는 초유의 사태가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이제 빈사(瀕死) 상태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교수 사직서를 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지방 사립대병원들은 속수무책이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서울 주요 5개 대학병원들은 경영 악화에 대비해 마이너스통장을 1000억 원 규모로 확대했으나, 다른 병원들은 사정이 다르다. 한 지방사립대 병원장은 “빅5가 아닌 지방대 병원들은 은행권 마이너스 대출이 어렵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의 작년 하루 매출이 37억 원 정도였는데, 한 달 째 하루 매출이 26억원 정도 밖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병원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구조라 당장 이달 비용 지급을 걱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올들어 물건값, 약품값 등 재료비는 오르니 부담이 더 크다”라고도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상급종합병원에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납품하는 중소 의료기기 업체와 의약품 도매상들도 울상이다. 대학병원들이 이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납품비 지급 기일이 무한정 늘어지고 있어서다. 도매상들은 시중은행의 ‘구매론’ 대출 상품을 통해 병원에 납품 채권을 넘기고 연 8~12%의 금리로 선이자를 떼고 물건값을 받아간다. 원래 받아야 할 돈보다 8~12%를 덜 받고 은행에 넘긴다는 뜻이다.
또 다른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빅5 병원들은 시중금리보다 낮게 마이너스통장을 확대해서 받을 수 있지만, 부실한 대학병원은 은행에 저금리로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금리를 높여서라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은행과 거리 실적 등에 따라서 대출 자체가 어려운 곳도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