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4일 부산대병원 수납창구 앞 한산한 대기석. /뉴스1

정부가 지역 간 의료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맞춤형 지역수가’를 도입한다. 지역 의료를 강화하고자 국립대병원 등 지역 거점병원을 수도권 ‘빅5병원’(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과제도 추진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은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고 의료체계를 정상화하는 ‘의료개혁’을 속도감있게 추진하고 있다며 의료개혁 과제 추진현황과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정부는 경증·중증 환자도 거주하는 지역 내에서 제 때 최적의 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지역의료를 강화할 계획이다. 지역 내 역량있는 병원을 육성하고 각 병원 간 네트워크를 강화해 수도권 환자 쏠림 등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다.

정부는 이를 위한 추진 과제 중 하나로 지역별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지역수가’를 도입할 계획이다. 정부는 분만 분야에 올해부터 지역수가를 적용하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상근하고, 분만실이 있는 모든 의료기관에 분만 건당 55만원의 수가를 주는데, 특별시·광역시 등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의 분만 의료기관에는 55만원을 추가로 지급한다.

정부는 맞춤형 지역수가 지급을 위해 의료 수요와 의료진 확보 가능성 등 의료 공급 요소를 지표화한 ‘의료 지도’를 만들 계획이다. 이 지도를 토대로 지역 상황에 맞게 수가를 책정·지급하는 것이다. 정부는 의료 지도 관련 연구를 다음 달부터 시작해 하반기부터는 정책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또 국립대병원이 필수의료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수 있도록 총액 인건비와 총 정원 규제를 혁신하기로 하고, 소관부처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기로 했다. 또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연구비 사용 관련 규제도 개선한다. 올해 법 제·개정을 거쳐 2025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국립대병원 등 지역 거점병원 역량을 수도권 주요 5대 병원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지역 거점병원의 임상과 연구, 교육 역량을 균형적으로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국립대병원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육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에 속해 있다. 이에 따라 국립대병원들은 정부 지침에 따라 필요한 정원 규모를 보고하고, 정원 조정에 대해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 총액 인건비도 정부가 정하는 인상률 한도에서 정해야 한다.

지역 내 의료기관의 허리 역할을 하는 지역 종합병원도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의료 수요를 감안해 약 3~4개의 지역 종합병원을 육성해 골든타임을 요하는 응급, 심·뇌, 외상 등 중증 응급 환자에 대한 치료 역량을 강화하고, 소아, 분만 등 특화된 기능도 강화한다. 지역 2차 병원의 필수의료 기능 강화와 집중 육성방안에 대해 지역, 병원계 의견을 폭 넓게 수렴해 올해 안에 종합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도 검토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한국보다 빨리 고령 사회에 진입해 의대 정원을 확대한 일본의 경우 2014년부터 ‘지역의료개호 종합 확보기금’을 운영 중이다. 이는 소비세의 증가분을 주요 재원으로 약 1조6000억원을 보유하고 있고, 지역의료 인력과 재가 서비스 확충에 쓰이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이런 사례를 참고해 지역의료발전기금 도입 방안을 마련하고, 재정 당국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역 의료기관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의대 지역인재전형 비율을 현행 40%에서 대폭 올리고, 의대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해 ‘지역·필수의료 교육’ 내용을 강화한다. 지역 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유인을 늘리고, 지역에서 근무할 ‘계약형 필수의사제’ 도입도 추진한다.

국립대병원 등 지역 거점병원의 임상과 연구, 교육 역량도 강화한다.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연구비 사용 관련 규제도 개선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해 안에 법을 제·개정해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또 정부는 진료지원(PA)간호사 제도화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날 오전 47개 상급종합병원 간호관리자와의 간담회를 통해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추진 상황과 건의 사항을 논의했다. 현재 상급종합병원 44곳이 약 4000명의 진료지원 전담간호사를 의료현장에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전 간담회에서는 시범사업 종료 이후에도 PA간호사를 제도화하고, 간호사들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가 있었다”면서 “정부는 건의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현장이 체감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7일 진료지원간호사 시범사업 지침을 보완해 총 98개의 간호사 업무를 정리해 8일부터 현장에 적용했다. 복지부 내에 간호협회, 병원협회, 의학회가 참여하는 ‘간호사 업무범위 검토위원회’도 지난 4일 구성해 진료지원간호사 업무에 대한 현장 질의에 대응하고 있다.

박 차관은 전날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국제노동기구(ILO)에 긴급개입요청 서한을 발송한 것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ILO 제 29호 협약에서 국민 전체 또는 일부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나 우려가 있는 경우 강제노동 적용 제외를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은 협약 적용 제외에 해당한다’는 정부 입장을 밝혔다.

또 최근 의사 커뮤니티에서 상급종합병원에 파견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공보의)들이 업무를 피하는 방법이 공유된 것을 두고 박 차관은 “병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라며 “확인해서 수사 의뢰든 필요한 조치를 해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는 지난 12일 ‘군의관 공보의 지침 다시 올린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학병원에 파견된 군의관과 공보의에게 태업을 권하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의대 증원 규모를 협상 대상으로 삼기 어렵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박 차관은 “정부가 정원 문제를 두고 특정 직역과 협상하는 사례는 없다”며 “변호사도, 회계사도, 약사도, 간호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협상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식’의 제안에는 더욱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박 차관은 “정부는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겠다”며 “의료개혁이 잘 정착되도록 제안해주는 어떠한 의견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