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육관에서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대한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뉴스1

전국 40개 의대가 지난해 정부의 수요조사에서 ‘2000~3000명도 가능하다’고 밝혔다가, 숫자가 논란이 되자 ‘수용할 수 없다’고 발표해 혼란을 일으킨 것과 관련해 의학계에서 자성의 목소리와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전국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학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 신찬수 이사장은 22일 통화에서 “논란에 책임을 지고 사직이나 사퇴를 하라고 하면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신 이사장은 “혼란을 일으킨 것에 책임을 지고 싶다”며 “다른 40개 의대 학장들도 사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전국 40개 의대 학장 협의회는 이달 19일 성명에서 “2000명 증원은 전국 의대 여건을 고려할 때 수용하기 불가능하다”라며 증원 철회를 요구했다.

그런데 이들 전국 의대 40곳은 작년 10월 정부의 2025학년도 신입생 증원 규모 수요조사에서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까지 가능하다고 제출했다. 넉달 전에는 ‘2000~3000명도 수용 가능하다’던 의대 학장들이 말을 바꾸자, 교육자인 학장들이 의사 집단의 이익에 맞춰 입장을 뒤집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신 이사장은 이에 대해 “학장들이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며 학장들과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 증원의 방향에 동의한다”며 “다만 첫해부터 2000명으로 늘리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이사장은 “정부가 작년에 의대 증원 논의를 시작했을 때 의료계에서는 의대 학장과 대학 총장들이 제일 전향적으로 움직였다”라고도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작년 정부의 의대 증원 수요조사에서는 의대보다 대학본부 측 입장이 크게 반영됐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의대 학장은 의대 증원 규모를 100명을 제시했는데, 대학본부에서 150명을 써냈다는 것이다. 신 이사장은 “조사에 응한 40개 학교마다 사정이 다른데 의대와 대학본부의 의견이 일치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며 “끝까지 의대 증원 규모를 10명으로 제출한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의대 학장들은 지난해 발표에서는 내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의약 분업 당시 줄어든 350명 정도가 적절하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발표한 2000명 증원과는 간극이 크다. 신 이사장은 “작년 8월 내부 설문조사에서 참여자 60%가 의대 증원 규모는 300~400명이 적당하다고 답한 것을 근거로 ‘350명 증원’을 얘기한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그는 “내년도 입시에는 350명을 증원하고, 그 이후에 500명, 1000명으로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방안을 정부가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매년 100명씩 입학하던 환경에서 시설을 투자하는 것과, 입학생이 갑자기 150명으로 늘어난 상황의 설비 투자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신 이사장은 “의대 증원 규모를 정부와 의학계가 협상하듯이 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보건 의료에 필요한 숫자를 산출해 제시해 주면, 그에 맞게 분배를 하는 게 맞는다는 뜻이다. 신 이사장은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서는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세부 재정 지원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촘촘하고 정교한 시나리오를 보여준다면 의대 교수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이사장은 최근 휴학계를 낸 의대생들을 걱정했다. 교육부는 각 의대에 집단으로 제출한 휴학계는 처리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휴학계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석하지 않으면 장기간 결석으로 제적 처리되고, 학비는 날리게 된다.

신 이사장은 의대 정원 문제를 두고 의사와 정부가 맞붙었던 지난 2020년 서울대 의대 학장을 지냈다. 당시 서울대 의대 학생들은 지금처럼 휴학계를 제출하고, 졸업반 학생들은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를 철회했다. 서울대 의대는 학생들 편에서 지지선언을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신 이사장은 “의대 학장들이 휴학계를 낸 의대생들이 학사 과정에 불이익을 보지 않도록 커리큘럼을 조정하며 개학을 늦추고 있지만, 이것 역시 2주가 한계다”라며 “빠른 결론이 나서 학생들이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