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대병원 암병동 수납창구에서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조연우 기자

전국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20일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대거 사직서를 내고 근무 중단에 돌입하면서 일부 환자들이 입원하지 못하고 대기하거나 병원을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췌장암 3기 환자 A씨는 “전공의 파업으로 입원 가능한 병실이 부족해 대기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병원 안내를 받았다”며 “오전 9시인데 항암 치료 입원 대기자만 44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는 “췌장암은 진행 속도가 빠르고 초기 대응이 중요해 한시라도 빨리 치료해야 한다고 하는데 걱정”이라며 “병원에 서둘러 입원하게 해달라고 사정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대병원의 전공의 수는 지난해 12월 집계 기준 740명으로, 이 병원 전체 의사(1603명) 중 46.2%를 차지한다. 5대 상급종합병원 중 가장 많은 규모다.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70대 보호자 B씨는 “암 투병 중인 아내가 일주일 전 퇴원했다 건강이 악화해 다시 왔는데, 병실에 입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까지 아내가 암투병하면서 이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는데 입원하지 못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힘들어하는 모습만 지켜보는 상황이라 힘들다”고 했다.

대장암 4기로 간에 암세포가 전이된 최모(30)씨는 “수술을 앞두고 예약이 취소될까 봐 걱정”이라며 “불안한 마음에 병원에 전화해봐도 진료과마다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만 답했다”고 토로했다.

2년 전부터 서울대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힌 유방암 환자 임모(35)씨는 “치료 경과 확인차 병원에 왔는데, 병원에 다녀본 이래로 가장 한산하다”며 “병원이 진료를 전반적으로 줄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들도 진료와 입원 병동 운영을 축소하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게 이날 만난 암 환자와 보호자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는 2개월 전 수술을 받은 뒤 입원해 있던 편도암 환자가 병동 운영이 축소되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그는 “중증 환자만 입원하고 종양내과 병동은 환자를 더 내보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전국 수련병원들이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전환하고, 병실 운영을 축소하고 급하지 않은 치료·수술 일정을 조정하는 등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면서 환자들의 불편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오후 6시 기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 사례는 총 34건인데,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신고된 피해 상담 사례 34건 중 수술 취소가 25건, 진료 예약 취소는 4건, 진료 거절은 3건, 입원 지연은 2건이었다. 1년 전부터 예약된 자녀의 수술을 위해 보호자가 회사도 휴직했으나, 갑작스럽게 입원이 지연된 사례도 있다.

이날 오전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 중 25% 수준인 1630명은 근무지를 이탈했다. 각 병원은 이들이 낸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복지부가 10개 수련병원 현장을 점검한 결과, 19일 오후 10시 기준 총 1091명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이 중 737명이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복지부는 728명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앞서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29명을 포함하면 총 757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현재 전공의들이 제출한 사직서를 병원들은 수리하지 않았다.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업무를 중단한 20일 오전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전공의 부재로 인한 비상진료체계를 알리는 안내가 전광판에 나오고 있다. 2024.2.20/뉴스1

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전공의들의 집단적인 근무 중단으로 인해 약 30∼50% 수준의 진료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 당시 전공의들이 ‘무기한 총파업’을 벌이면서 이 수준으로 진료 규모를 축소 운영했다.

현재 보건 당국과 각 병원은 의료 시스템 과부하를 막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소속 한 의료진은 “이미 수술 일정이 잡힌 환자들은 예정대로 수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병원 측은 “기존 교수들과 전임의, 입원전담전문의,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간호사 등 이탈 전공의를 제외한 인력이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운영에 큰 차질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근무지 이탈자는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면서 “나머지 병원에서는 이탈자가 없거나 소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의료대란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 대학병원 전임의들마저 집단 사직 대열에 가세하거나, 종합병원이나 병의원 등 1~2차 의료기관이 파업에 동참할 경우 ‘의료대란’이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전공의 여러분께서는 환자 곁으로 돌아가 주시길 바란다”며 “여러분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일은 정말로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