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4년 제1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입장하고 있다. 2024.2.6/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정부가 대규모 전공의 파업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인 16일 서울 주요 병원, 이른바 ‘빅 5′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내겠다고 발표하면서 의사 증원을 둘러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의사들은 정부가 전공의가 파업을 할 경우 진료보조(PA)간호사를 활용하고,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젊은 의사들을 더 자극했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의사가 대체될 수 있다는 식의 강력한 압박 카드를 믿고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드렛일을 하는 노동자이든, 회사원이든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당신이 말을 안듣는다면 대체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은 상대를 자극하기 마련인데 정부가 명분론에 빠져 이 같은 아마추어적 방식으로 으름장을 놓은 것이 의사 증원의 필요성에 일부는 공감하던 전공의들까지 자극했다는 지적이다.

이날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회의 박단 회장은 페이스북에 서울대와 세브란스, 서울성모, 서울아산, 삼성서울병원 등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오는 20일 새벽 6시 병원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초 오는 3월 20일까지 근무를 예고했던 박 회장도 같은 기간 사직서를 내기로 했다.

박 회장은 전날(15일) 사직서 제출을 예고하면서도 “전공의들은 부디 집단행동은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를 두고 의료계에서는 전공의들이 정부의 법적 대응을 피하기 위한 ‘조용한 개별 집단행동’ 방식을 취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런데 박 회장이 간밤 전공의단체 회의를 거쳐 단체행동으로 돌아선 것이다.

정부는 내년 2월은 전공의들의 실기시험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집단행동이 쉽지 않고, 전공의들이 당직 등으로 현업으로 바쁘기 때문에 한 데 모이기 쉽지 않다고 봤다. 전공의들이 집단 파업에 나설 경우 전공의 각자의 개인적 피해가 막심하기도 하다.

당장 서울성모병원은 전공의 단체에 가입은 돼 있지만, 전공의를 대표하는 병원 대표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서울성모병원에도 회장이 뽑혔다. 오죽하면 2년차들이 모여 사다리타기로 회장을 선출했다고 한다. 빅5 중에서도 중증 응급의료에 상징성이 큰 서울대병원 전공의들도 전날 한자리에 모여 사직서를 내자고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에서는 정부의 불도저식 정책이 화를 불렀다고 봤다. 서울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정책 그 자체보다는,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할 경우 의사 면허가 취소되고, 사직서를 내게 되면 군대를 가야 한다고 밝힌 방침에 화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의사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태도에 질렸다”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군대를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의대증원에 동의하지 않으면 군대를 가야 한다고 협박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돌아섰다”라고 말했다. 기피과로 분류되는 소아청소년와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등에서 수련을 받는 전공의들의 반발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전공의가 인턴을 마친 후 레지던트를 지원하지 않을 경우 남성의 경우에는 ‘군대를 가야 한다’며 ‘이미 군의관 선발절차가 마무리됐기 때문에 군대를 가려고 해도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일찌감치 전국 수련병원에 전공의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렸다.

정부는 국내 수련병원의 병원장을 불러 사직서 수리를 금지했지만, 정작 병원 내부적으로는 전공의 집단행동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은 각 의국을 이끄는 의국장을 통해 교수들에게 사직서 제출 인사를 올렸다고 한다. 과장 교수들의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 전공의는 ‘교수님들이 응원해주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병원장의 사직서 수리 여부와 상관없이 전공의들이 진료를 거부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의료계는 봤다. 하지만 정부는 이날 전국 221개 수련병원에 대해 집단 연가 사용 불허와 같은 필수의료 명령을 발동했다.

정부는 또 현장 점검을 통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진료에 참여하지 않는 전공의를 확인하면,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면 법에 따른 처벌이 가게 된다. 의료법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면 최고 3년 이하의 징역과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아직 대규모 전면 파업이 시작했다고 보지 않는다. 빅5 전공의들 중에서 사직서를 내고 수리된 것은 없고, 오는 20일 파업을 예고하는 선언에 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와 별개로 이번에 집단행동을 이끌어낸 빅5 전공의 대표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는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는 집단행동을 의사결정했기 때문에 명령위반이 확실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