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발표하면서, 개원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들은 정부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협상 파트너였던 의협은 임원진 총사퇴와 함께 총파업을 예고했다. 의료계는 의사 수는 현재도 충분하며, 정부는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막는 중요한 방안으로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고, 의사 수 증가는 의료 수요 증가로 이어져 건보 재정 악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 진료비 폭증으로 의료 체계 붕괴 가능성
의료계는 지금도 의사는 충분하다고 본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최근 의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오히려 의대 입학 정원 감축이 절실하다’는 응답이 38.6%로 가장 많았다. 저출산으로 인구는 줄어드는 추세인데, 매년 의대를 졸업하는 의사는 나오지만 은퇴하는 의사는 없어서 오히려 인력 과잉이라는 것이다.
의료계는 여기에 의사 수가 갑자기 늘어나면 의료 수요가 늘어나게 되고, 이로 인해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봤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의사 증가는 곧 진료비 증가”라며 “의료 공급자인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 수요도 함께 늘어나 건강보험 등 의료 관련 재정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구 1000명 당 의사 1명 증가 시 의료비는 22% 늘어난다는 지난 2007년 건강보험공단의 연구 보고서도 의료 단체의 근거다. 우 소장은 의료정책연구소가 지난 10년 통계를 기반으로 자체 추산한 결과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날 경우 오는 2040년 국민 1인당 의료비는 매월 6만원 더 발생할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인력은 한번 늘리면 되돌리기 어렵다. 의료계에서는 건보 재정 악화로 의료민영화가 될 것이란 예측도 내놓는다. 다만 한국의 인구 1000명 당 활동 의사 수는 지난 2017년 기준 2.3명으로, OECD 평균인 3.5명 보다 적다.
◇ 필수·지방의료 활성화 실효성 떨어져
정부가 의대 증원의 이유로 필수·지방 의료를 내세운 논리가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 소장은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MRI와 CT 등 고가의 진단검사를 수행하는 상급종합병원들의 수익은 크게 개선됐지만, 개원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상급종합병원의 병상수가 늘어나고 분원 설치도 늘었지만, 의원급이나 종합병원급의 지역 의료 기반은 오히려 무너졌다고 우 소장은 설명했다. 그는 “덩치가 커진 대학병원이 전공의 부족 문제를 의대 증원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며 “정작 인턴·레지던트를 마친 전공의들이 대학병원을 떠난 후에도 전공을 살릴 것이란 보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대학병원 병상은 줄이고 지역병원 병상은 늘리는 일본과 반대되는 추세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 의료교육 부실화 가능성
의료 교육 현장의 인프라가 갑작스러운 증원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우 소장은 “의학 교육은 책상만 놓고 수업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임상 교육이나 실습이 더 중요하다”면서 “1980년대 졸업정원제 시기 입학한 의대생들은 해부 교육용 시체(카데바)도 부족해 곤란을 겪은 바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2000명이 늘어날 경우 교육 인프라가 준비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전공의는 “이미 카데바 1구 당 학생이 10여명에 달하고, 현미경도 부족한 와중에 1년 새 정원을 50% 가까이 늘리겠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날 2000명이라는 파격적 의대 증원 규모를 사전 합의 없이 발표한 것에 대한 반감도 컸다. 정부는 이날 오전 10시 갑자기 의료계와 대화 창구인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계획했으나, 의협은 불참했다. 개원의는 물론 전공의 단체는 지난 1일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이 정책 패키지에는 중증 응급 진료에 대한 수가 인상 등의 당근책도 있었지만, 이와 별개로 개원면허제와 급여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정책 등 의사의 기대소득을 낮추는 정책이 다수 담겼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전공의는 “필수·지방의료 문제의 핵심은 저(低)수가와 의료소송 문제”라며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로 해결이 됐다고 하지만, 실제로 해결된 것은 없다고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