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암 진단과 치료 기술, 암환자의 생존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도 이를 유지하려면 국가의 암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다.
대한암학회는 1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립암센터와 함께 ‘2023 암연구동향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암 위험 요인과 예방, 검진, 기초와 임상 연구, 치료, 진단 기술에 이르기까지 국내 암 연구 동향을 상세히 분석하고 앞으로 어떤 지원과 정책적인 개선이 필요한지 총망라했다.
한국에서는 매년 25만 명의 암환자가 발생해 8만 명이 암으로 사망한다. 암 환자의 생존비율은 1990년대(42.9%) 대비 2020년대 71.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인구 고령화로 인해 암환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여전히 약 30%의 암환자가 암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고 있다.
대한암학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암을 진단받은 환자는 24만7952명으로 2000년 대비 14만4896명 늘었다. 2020년 기준 암을 진단받고 치료 중이거나 치료를 마친 암 경험자의 수는 228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4.4%를 차지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로 따져보면 약 13.4%가 암환자다. 학회는 암은 이제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므로, 암 연구와 암 생존자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적·제도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신약 개발로 이어질 만한 기초 연구 많아... 기초-임상 잇는 연구는 소폭 감소
학회는 세계 최대의 학술지 색인 데이터베이스인 웹 오브 사이언스 DB를 활용해 국내 연구자들이 2022년 출판한 암 분야 논문 9114편을 분석했다. 그 결과 국내 연구진이 가장 많이 연구하는 주제는 유방암과 폐암, 대장암 순으로 나타났다. 인용 수 역시 유방암, 폐암이 가장 많았으며 논문 수 대비 인용수는 간암이 높게 나타났다.
암 진료 기술 관련해서는 면역학과 암 자가포식·세포자연사, 피토케미컬(식물성 화학물질)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 새로운 항암제 개발로 이어질 기초연구가 활발하다는 뜻이다.
또한 국내 연구자들이 낸 연구 성과 중 82.1%는 미국과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해외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낸 것으로 확인됐다.
학회는 2020년 이후 국내에서 진행한 암 임상시험이 전세계에서 8번째로 많다고 분석했다. 2022년 기준 전세계에서 암 임상시험을 가장 많이하는 국가는 미국(2118건)이고 중국(1771건)과 프랑스(529건), 스페인(359건), 이탈리아(344건) 등이 뒤를 잇는다. 같은 해 국내에서는 260건이 진행됐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동아시아 지역에서 흔히 발생하는 위암과 간암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학회에서는 국내 연구자 주도 암 임상시험이 최근 감소했음을 짚었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이란 임상시험 실시기관 소속 임상시험자가 외부 의뢰 없이 학술연구 목적으로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임상시험을 말한다. 즉, 암 진단과 치료에 관한 기초 연구가 임상으로 이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내 연구자 주도 암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미국의 10% 규모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 암 진단·치료·생존환자 관리 세계 최고 수준 유지하려면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제도적 개선 필요해
학회는 암을 진단, 치료하고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국내 의료 수준이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면서도 이 수준을 계속 유지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인 투자와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국내 암 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암 질환에 대한 사회경제적 부담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04년 8조3091억 원에서 2019년 23조7105억 원으로 연평균 6.8%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직접 의료비 외에 생산성 손실 비용 등 간접 비용까지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학회는 암이 환자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며, 암 연구와 관리에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2017~2021년 과거 5년간 정부의 암 연구개발에 대한 연간 예산은 6331억 원에서 8559억 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전체 생명보건 의료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 학회는 타질환 대비 암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축소했다고 짚었다.
학회는 정부의 암 연구에 대한 예산 비중을 늘리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과제당 2억~2.9억 원 규모로 지원되고 있지만 최근 기초-임상 간 중개연구, 면역항암제와 항체-약물접합체(ADC) 같은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과제당 지원액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학회는 특히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데 지원비가 많이 부족하다며 각 과제별 특성을 고려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항암 임상시험이 2018년(247건)부터 2021년(321건)까지 꾸준히 늘었지만 2022년(259건) 급감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학회는 국내 연구자가 주도하는 임상시험이 최근 5년간 감소 추세라며, 제약회사에서 하기 어려운 암 연구와 중개연구를 지속하려면 국가에서 연구자 주도 항암제 임상시험이 활성화하도록 제도적 개선과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회는 신약 개발에 대해서도 국가적인 지원과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암 관련 시장은 전체의 10~18% 차지하며 2018년 1340억 규모에서 2025년 327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암 관련 치료제와 진단 시장 규모 역시 2018년 대비 2025년 22억 달러 규모로 두 배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항암제를 실제 임상에서 사용하도록 승인되는 데 까지 시간은 미국 대비 평균 3~4년이 더 걸린다. 급여까지는 추가적으로 1~2년이 더 걸려, 실제 환자가 신약을 사용하기까지 4~6년이 더 걸린다. 이는 국내 환자들에게 글로벌 표준치료가 늦게 도입될 뿐 아니라 임상시험 자체의 기회마저 제한된다고 볼 수 있다.
이날 김태용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암 치료나 암 생존률 등 국내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암 발생률이 현재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도 암 연구와 환자 관리는 중요하다”며 “다른 국가들이 암 연구와 임상시험에 적극적으로 지원·투자 하듯이 한국도 현재 가지고 있는 기초, 임상 의학의 수준, 생존율을 유지하려면 앞으로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과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축사를 통해 “이번에 발간한 보고서는 국내의 암 연구와 임상에 대한 동향을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한 것에 의미가 있다”며 “국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정확하게 알리고 국가가 암 관리 정책을 수립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