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 최고 수율 도파민 세포를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금까지 완벽한 치료제가 없었던 신경퇴행성질환인 파킨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세브란스병원은 김동욱 연세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연구진이 에스바이오메딕스, 김대성 고려대 교수팀과 함께 임상용 배아줄기세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고수율 도파민 신경전구세포를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대규모 동물시험을 통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증명했다고 12일 밝혔다. 현재 세브란스병원에서 임상시험 진행 중이다.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 치매 다음으로 흔한 퇴행성 뇌신경질환이다. 중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망가지면서 나타나는 병이다. 지금까지는 약물이나 수술을 통해 부족한 도파민을 대체해 증상을 완화하는 수준에 그친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지속적으로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없어서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수 없다.
최근 국내외 전문가들은 파킨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배아줄기세포나 역분화줄기세포에 주목하고 있다. 이것으로 중뇌 특이적 도파민 신경전구세포를 만들어 뇌에 심으면, 죽은 도파민 세포 대신에 도파민을 생산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대부분 연구진들은 도파민 세포를 만드는 과정의 신호를 조절하기 위해, 줄기세포에 저분자 물질이나 재조합 단백질을 섞는다. 그만큼 질적으로 훌륭한 도파민 세포를 얻는 데 한계가 있는 셈이다.
김동욱 교수 연구진은 세포 투과가 가능한 저분자 물질만을 사용해 정밀한 분화 신호 조절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 연구진보다 높은 수율의 도파민 전구세포를 제조할 수 있었다.
또한 연구진은 다른 연구진들이 줄기세포를 2차원으로 분화하는 것과 달리, 3차원으로 분화시켜 도파민을 대량생산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1회 분화시킨 양으로 도파민 신경전구세포를 약 3.18조 개 생산했다. 이는 파킨슨병 환자 약 25만 명을 치료할 수 있는 양이다.
연구진은 파킨슨병 동물 모델 쥐에서 대규모 유효성 시험을 수행했다. 쥐에 이식한 도파민 신경전구세포는 성공적으로 도파민 신경세포로 성숙했으며, 암페타민을 이용한 회전 시험에서 16주 후 회전 행동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도파민 세포 이식을 통한 기능 회복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다.
쥐의 뇌에 이식한 도파민 세포를 양전자 단층촬영(PET-CT)으로 분석했더니 뇌에 잘 정착해 장기적으로 도파민을 생성함이 확인됐다. 또한 파킨슨병 모델 쥐들에게 도파민 세포를 각각 5000개, 1만 개, 2만 5000개, 10만 개 심어 행동 평가를 진행한 결과, 1만 개 이상 이식한 쥐들에게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연구진은 사람에게 적용하려면 최소 315만 개를 이식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면역 부전 쥐에게 도파민 세포를 이식해 안전성 시험을 진행한 결과 1년 후까지 종양 형성이나 독성이 관찰되지 않았다.
김동욱 교수는 “비임상 시험 결과를 토대로 식약처에서 파킨슨병 환자 대상 1·2a 임상 승인을 받아 세브란스병원에서 임상시험 진행 중”이라며 “안전하고 효능이 뛰어난 혁신적이고 근본적인 치료제를 개발해 파킨슨병 환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에서도 배아줄기세포 유래 도파민 세포를 이용한 파킨슨병 세포치료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김동욱 교수 연구진이 유일하다. 현재 저용량 3명, 고용량 3명 대상으로 투여했으며 특별한 수술 부작용 없이 증상이 호전되고 있다.
이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셀 스템셀’ 11일자에 실렸다.
참고 자료
Cell Stem Cell(2023), DOI: https://doi.org/10.1016/j.stem.2023.1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