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왼쪽에서 두번째) 이식외과 교수 등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 이식팀이 MRKH 증후군을 가진 35세 여성에게 지난 1월에 뇌사한 환자의 자궁을 이식해 10개월째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 중이다./삼성서울병원

국내에서 최초로 자궁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이식받은 환자는 현재 거부 반응 없이 정상 기능을 유지하며 시험관아기 시술(IVF)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박재범·이교원 이식외과 교수, 오수영·이유영·이동윤·김성은·노준호 산부인과 교수 등 다학제 자궁 이식팀이 MRKH 증후군을 가진 35세 여성에게 지난 1월에 뇌사한 환자의 자궁을 이식해 10개월째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선천적으로 자궁·질 없는 35세 여성에게 자궁 이식

여성 생식기관인 자궁과 난소, 질./Scientific Animations

MRKH 증후군은 선천적으로 자궁과 질이 없거나 발달하지 않는 질환을 말한다. 여성 5000명당 1명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학계는 추산한다. 난소 기능은 정상이어서 배란이 가능하다. 이론상 자궁을 이식받으면 임신과 출산도 가능하다. 이식받은 여성은 월경 주기가 규칙적인 만큼 이식된 자궁이 정상 기능 중이고, 최종 목표인 임신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범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17일 대한이식학회 추계 국제학술대회(Asian Transplantation Week 2023)에서 관련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이번에 삼성서울병원에서 자궁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역시 MRKH 증후군 환자로 결혼 이후 임신을 결심하고 2021년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당시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2020년부터 꾸려져 관련 임상 연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환자의 적극적인 의지에 자궁이식팀 역시 속도를 냈다.

국내 첫 사례인 만큼 자궁이식팀은 법적 자문과 보건복지부 검토를 진행하고,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까지 모두 마치며 신중히 접근했다. 각자 전문 분야별로 해외에서 발표된 논문과 사례를 조사하며 이론적 배경은 물론 실제 이식 수술, 이식장기의 생존전략, 임신과 출산까지 모든 과정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첫 걸음부터 어려웠다. 국내 의료보험체계에서 새로운 수술의 시도는 ‘임상연구’라는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어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자궁 이식을 통해 새 생명을 품으려는 환자의 의지와 의료진의 열정에 공감한 후원자들이 기부를 했다. 이미 여러 차례 의료 연구에 기부를 했던 개인과 재단 기부자를 비롯해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 제작진 등 여러 후원자들이 연구비 기부에 참여했다. 슬의생 제작진은 극중 채송화 교수의 롤모델이자 제작 자문을 맡았었던 자궁이식팀의 오수영 산부인과 교수와의 인연이 기부로 이어졌다.

첫 수술 역시 쉽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생체 기증자의 자궁을 환자에게 이식했지만, 이식 자궁에서 동맥과 정맥의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2주만에 제거해야 했다.

절망의 위기에도 환자의 굳은 결심을 보고 자궁이식팀은 다시 힘을 내어 뇌사기증자 자궁 이식을 기다렸다. 다행히 첫 이식 실패 6개월 여 만인 지난 1월, 뇌사 기증자가 나타나 두 번째 이식수술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됐다.

자궁이식팀은 지난 실패를 교훈 삼아 모든 과정을 다시 꼼꼼히 살폈다. 공여자의 장기적출부터 전 과정을 완벽히 진행했다. 기증자 자궁과 연결된 작고 긴 혈관 하나까지 다치지 않도록 정교한 수술을 하는 것이 자궁 이식 초기 성공의 중요한 포인트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병원에 따르면 환자는 이식 후 29일만에 ‘생애 최초’로 월경을 경험했다고 한다. 자궁이 환자 몸에 안착했다는 신호다. 첫 월경 이후 환자는 규칙적인 생리주기를 유지 중이다. 이식 후 2, 4, 6주, 4개월, 6개월째 조직검사에서 거부반응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의료진은 이식한 자궁이 환자 몸에 완전히 자리잡았다고 평했다.

이제 의료진과 환자는 시험관아기 시술로 아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자궁이식팀의 이동윤, 김성은 산부인과 교수는 이식 수술에 앞서 미리 환자의 난소로부터 채취한 난자와 남편의 정자로 수정한 배아를 이식한 자궁에서 착상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임신 이후 무사히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여러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2020년 세계에서 세 번째, 국내에서 처음으로 면역관용유도 신장이식을 받은 환자의 임신과 출산에 성공하는 등 장기이식 환자의 출산 경험이 풍부하다.

박재범 이식외과 교수는 “자궁 이식은 국내 첫 사례이다 보니 모든 과정을 환자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는 심정으로 신중하게 임했다”며 “첫 실패는 참담했지만 환자와 함께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 두 번째 수술에서 자궁이 무사히 안착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유영 산부인과 교수는 “환자와 의료진뿐 아니라 연구에 아낌없이 지원해준 후원자들까지 많은 분들이 도움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어려운 선택을 한 환자와 이를 응원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세계 첫 자궁 이식은 사우디에서 시도, 스웨덴에서 출산까지 성공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삼성서울병원

자궁 이식을 세계 최초로 시도한 것은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였다. 당시 환자는 이식한 지 100일만에 거부반응으로 이식한 자궁을 떼어내야 했다. 2014년에는 스웨덴에서 최초로 자궁 이식에 성공해, 출산까지 성공했다.

이후 지금까지 관련 근거가 쌓이면서 이식 성공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미국 베일러대학병원이 2021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6~2019년 이 병원에서만 20명 중 14명이 자궁을 이식받는 데 성공했다. 이 중 79%인 11명이 출산까지 마쳤다.

국제 자궁이식학회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 성공 사례를 포함해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자궁 이식에 성공한 사례는 총 109건이다. 한 번 자궁 이식에 실패해 다시 재이식해 성공한 사례는 삼성서울병원이 최초다.

삼성서울병원은 현재 또 다른 환자의 자궁 이식을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도 이처럼 자궁 이식 성공 경험이 계속 쌓이면, MRKH 환자 등 자궁 요인에 의한 불임으로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환자들에게 자녀 출산의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