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을 풍토화하는 데 기여한 공으로 올해 노벨상 수상까지 거머쥔 mRNA가 최근 암을 치료하는 백신으로 탄생하고 있다. 인류가 암을 정복하겠다는 과제의 키로 등장한 것이다./Arizona State University

미국 화이자와 함께 세계 최초로 메신저 리보핵산(mRNA) 코로나19 백신을 내놨던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mRNA 기반 암 백신(CARVac)에 대한 첫 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총 4회 맞아야 하는 백신을 2회만 맞아도 95% 확률로 종양 성장이 멈췄다.

역시 mRNA 코로나19 백신을 내놨던 미국 모더나는 미국 머크(MSD)와 함께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을 치료하는 mRNA 암 백신(mRNA-4157)을 개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이 백신을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함께 사용하면 시너지 효과까지 나타난다는 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풍토화하는 데 기여한 공으로 올해 노벨상 수상까지 거머쥔 mRNA가 최근 암을 치료하는 백신으로 탄생하고 있다. 인류가 암을 정복하겠다는 과제의 키로 등장한 것이다.

◇mRNA 암 백신, ‘꿈의 약’ 면역세포 치료제보다 대량생산·보관이 수월

mRNA 암 백신을 설계해 생산하는 과정. 혈액으로부터 건강한 조직과 암 조직 샘플 획득하고 유전자 서열을 분석해 어떤 항원을 표적으로 할지 고른다. mRNA 서열을 설계해 백신을 완성해 대량생산한다. 이 백신을 환자에게 투여하면 면역계가 활성화해 암 조직이 죽는다./Johns Hopkins University, Frontiers in Immunology

mRNA는 DNA의 사본격인 핵산으로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과 식물, 세균 등 생물, 심지어는 바이러스도 갖고 있다. mRNA에 있는 유전정보를 토대로 세포 기관이 단백질을 만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세포 기관이 없어서 사람 등 생물에 기생한다. 그 생물의 세포 기관을 이용해 mRNA의 정보대로 단백질을 만드는 것이다. mRNA 백신의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기존 백신은 몸속으로 단백질(항원)이나 병원체를 넣어 면역계를 활성화시킨다면, mRNA 백신은 항원의 유전정보가 담긴 mRNA를 몸속으로 넣는 방식이다. 이 mRNA가 몸속에서 항원을 만들면 면역계가 활성화한다.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mRNA 기반 암 백신 파이프라인은 약 178개 정도로 알려졌다. 대부분 전임상 또는 임상시험 중이다.

현재 ‘꿈의 약’이라 불리는 면역세포 치료제에 대한 개발도 활발하지만 T세포나 NK세포 등 면역세포가 체외에서 생존력이 떨어진다는 점, 면역세포를 혈액에서 추출해 증식하는 방법이 쉽지 않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mRNA는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보관하기가 비교적 쉽다는 장점이 있다.

◇ ‘mRNA 코로나19 백신’ 개발했던 모더나, 화이자가 mRNA 항 백신도 앞서

mRNA 암 백신을 투여했을 때 환자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 백신이 세포 안으로 mRNA를 넣어 세포 기관을 이용해 단백질을 만든다. 이 단백질이 면역계를 활성화해 암세포가 사멸하도록 촉진한다./Johns Hopkins University, Frontiers in Immunology

mRNA 암 백신으로 가장 앞선 것은 모더나와 MSD가 개발한 mRNA-4157이다. mRNA 암 백신 중 유일하게 임상 2상을 마치고 현재 임상 3상 중이다. 모더나는 세계 최초로 mRNA 기반 백신 기술을 개발한 곳답게 현재 이 암 백신을 비롯해 mRNA 백신 파이프라인을 43개나 갖고 있다.

mRNA-4157은 각 환자의 종양 돌연변이에 맞게 맞춤형으로 만든다. 흑색종 환자의 약 91%는 공통적으로 비정상적인 단백질 34가지를 갖고 있다. 이 백신에는 이들 단백질의 유전정보를 가진 mRNA가 환자 맞춤형으로 들어 있다. mRNA가 환자의 몸속에서 단백질을 만들면 면역계가 활성화하면서 암세포를 죽인다.

임상 2상 결과에 따르면 mRNA-4157은 MSD의 키트루다와 함께 병용 투여 했을 때 암 재발 또는 사망 위험이 44%까지 낮아진다. 키트루다는 암 세포가 T세포에 들러붙어 항암 효과를 내지 못하게 방해하는 단백질인 PD-1을 차단하는 약물이다.

mRNA-4157의 임상 3상 결과는 2029년에 나올 전망이다. 키트루다와의 병용요법은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혁신약으로 인정 받았다.

그 다음으로 출시 가능성이 높은 mRNA 암 백신은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CARVac이다. 이 백신은 총 4단계에 걸쳐 접종한다. 지난달 23일 밝힌 임상 1/2상 결과에 따르면 2단계까지 투여한 13명 중 95%는 종양 성장이 멈췄고, 59%는 종양이 30% 이상 작아졌다. 4단계까지 모두 접종한 38명은 74%가 종양 성장이 멈췄고, 45%는 종양이 30% 이상 작아졌다. 바이오엔테크는 2030년까지 CARVac으로 암 환자 1만명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내년 임상 2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바이오엔테크는 흑색종 외에도 전립선암과 췌장암, 자궁경부암, 비소세포폐암 등 주로 고형암을 대상으로 임상 1~3상 중인 암 백신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다.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암센터 연구진은 기존 항암제가 듣지 않는 췌장암에 대한 mRNA 백신을 개발해 지난 5월 임상 1상 결과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이 백신은 췌장암 세포 표면에 난 특정 항원을 인식해 공격하는 원리다. 임상 1상 결과, 이 백신을 투여한 참가자 16명 중 절반이 암 재발 위험이 낮아지고 병의 진행속도가 느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임상 2상에서 기존 항암제나 수술요법을 병용했을 때 효과를 알아볼 계획이다.

◇ 국내는 한미약품에서 개발한 것이 전임상 마쳐

암세포(가운데 파란색)를 둘러싸고 있는 T세포(녹색 및 빨간색). T세포는 암세포를 인식해 그 세포가 사멸하도록 유도한다. CAR-세포 치료제는 T세포를 유전자 조작해 건강한 세포는 거의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표적으로 유도미사일처럼 공격하도록 만든 약물이다./NIH

아직 국내에서는 mRNA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한 곳이 없다. 국내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GC녹십자가 mRNA 기반 코로나19나 독감 백신을 개발화 상용화했거나 임상시험 중이다.

mRNA 암 백신은 한미약품이 개발한 것이 전임상을 마친 단계로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하다. 이 백신은 치명적인 발암 유전자(KRAS) 변이를 표적으로 한다. 원래 KRAS 유전자는 세포가 성장하고 분화, 증식, 생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 변이가 생기면 폐암이나 대장암, 췌장암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 4월 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 공개한 동물실험 결과에 따르면, 한미약품 연구진은 KRAS에 돌연변이를 가진 비소세포폐암 마우스 모델에서 이 백신이 종양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이외에도 SML바이오팜이나 엠큐렉스 등도 mRNA 기반 암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mRNA 암 백신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암세포에 나 있는 수많은 비정상적인 단백질 중 면역계를 활성화할 만큼 효과적인 항원을 선택하는 것과 세포 안까지 mRNA 잘 배송하는 것이다. 현재 mRNA 전달체로 쓰이는 지질나노입자는 코로나19 백신 상용화로 이미 효과가 입증됐다. 하지만 이보다 더 쉽게 투여하기 위해 최근에는 지질나노입자 대신 경구 복용 형태나 파스 형태(마이크로니들 패치), 흡수가 가능한 에어로졸 형태 등으로도 개발되고 있다.


참고 자료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d41591-023-00072-0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6063-y

Frontiers in Immunology(2023) DOI: 10.3389/fimmu.2023.1246682